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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前 대통령 별세]"서민 내집마련 꿈 실현"···분당·일산 등 200만호 공급

■1기 신도시 조성

집값 폭등으로 사회문제 커지자

임대 25만가구 등 공급 드라이브

분양 속도전에 품질불량 부작용도

투기 막고자 '토지공개념'도 도입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지난 1990년 5월 부동산 투기·물가·수출 등 총체적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국민의 협조를 호소하는 ‘시국에 관한 특별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택을 짓는 ‘집 대통령’으로 남고 싶습니다.”

지난 1987년 ‘보통사람의 위대한 시대’를 표방하며 대선에서 당선된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이 평소 참모진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에게 했던 말이다. 민주정의당 대선 후보 시절 내세웠던 공약 ‘주택 200만 가구 공급’에는 이런 노 전 대통령의 생각이 담겼다. 노 전 대통령은 이후 1989년 2월 취임 1주년을 맞아 연 행사에서 서민 대상 영구임대주택 25만 가구를 포함해 임기 내 수도권에 90만 가구, 지방도시에 110만 가구 등 총 200만 가구를 짓겠다는 정책을 공식 발표한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행사 연설에서 “보통사람들에게 내 집 마련의 꿈을 당장 실현시킬 수 있는 주택정책을 올해부터 밀고 나가겠다”며 강한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투기 세력 정밀 타격…역사적인 200만 가구 주택 공급=노 전 대통령이 주택 문제에 애착을 보인 것은 당시 토지와 주택 가격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전두환 정권 동안 강력한 안정화 정책의 영향으로 연평균 10.5%로 비교적 안정적이던 지가 상승률은 노태우 정권 출범 첫해인 1988년 27.5%, 1989년 32%까지 상승했다. 주택 가격 역시 1988년 13.2%, 1989년 14.6%, 1990년 21%로 높은 상승률을 나타냈다. 주택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노 전 대통령은 1989년 2월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 “최근 부동산 가격의 상승으로 국민의 물가 불안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토지 투기 현상과 상류층의 아파트 투기에 대해 적절한 대책을 강구해 부동산 투기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하게 됐다.

5년 만에 당시 전국 주택 수(640만 가구)의 3분의 1가량을 추가하겠다는 것은 무리를 넘어 무모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집 대통령’을 꿈꾼 노 전 대통령은 이 계획을 그대로 밀어붙였다. 200만 가구 건설 사업의 하이라이트는 신도시 건설 사업이었다. 집을 지으려고 보니 서울 시내는 이미 포화 상태고 그린벨트는 손을 댈 수 없으니 서울 중심에서 20㎞가량 떨어진 그린벨트 너머에 신도시를 건설하자는 대안을 찾은 것이다. 이른바 1기 신도시인 분당과 일산·중동·평촌·산본이 탄생한 배경이다.

집값 폭등…토지공개념 3법 등 무리수도=부동산 가격 폭등은 정권의 존립과도 직결됐기에 전력투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조순 경제부총리와 문희갑 청와대 경제수석 등 경제관료들은 연일 “개혁이 없으면 민란이 일어난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결국 8·19부동산 대책을 통해 부동산 종합 대책을 발표하면서 토지제도를 개혁하기 위한 ‘토지공개념 연구위원회’도 신설했다. 연구위원회는 1989년 4월 ‘토지공개념 확대도입을 위한 국민토론회’를 열고 ‘1기 신도시(분당·일산)’와 함께 ‘토지공개념 3법’ 카드를 꺼내 들었다. 서울 등 6대 도시 소유 택지 면적을 660㎡(200평)로 제한한 ‘택지소유상한법’과 △개발이익을 세금으로 환수하는 ‘개발이익환수법’ 및 ‘토지초과이득세법’ 등이다. ‘지가’가 지나치게 상승해 소득 불균형이 심화되고 개발이익이 소유주 개인의 사익으로 기형적으로 변질되면서 서민 경제가 붕괴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본 것이다. ‘서민부터 살리고 보자’는 정책 일관성과 투기 세력을 정밀 타격한다는 방향성으로 추진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89년 10월 청와대에서 토지공개념 관련 법안에 대해 조순 부총리에게 보고받고 국회 제출 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빠른 신도시 건설…속도전 부작용도=노태우 정권은 신도시 건설을 빠르게 진행했다. 1989년 4월 신도시 건설 계획을 발표한 지 7개월 만인 같은 해 11월 분당 시범단지(4,030가구)가 분양됐다. 이어 2년 만인 1991년 9월 분당의 첫 입주가 시작됐고 1992년부터 평촌(3월), 산본(4월), 일산(8월), 중동(12월) 등이 잇따라 뒤를 이었다. 신도시뿐 아니라 200만 가구 정책 역시 가속도가 붙을 대로 붙어 1991년 8월 214만 가구를 지어 목표치를 추가 달성하며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었던 ‘건설 광풍’은 일단락됐다.이 같은 주택 ‘물량 공세 속도전’은 역시 큰 부작용을 낳았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공사가 이뤄지다 보니 건설자재 품귀 현상이 빚어졌고 각 공사장에서 충분한 품질 검사 없이 아무 자재나 끌어쓰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1991년 이른바 불량 레미콘, 바닷모래, 불량 철근 파문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 탓에 일부 신도시에서는 이미 완공된 아파트를 헐고 다시 짓는 어이없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1기 신도시들은 당초 목표와 달리 자족 능력이 떨어지는 문제도 있었다. 이들 신도시가 이른바 ‘베드타운’화한 것이다. 신도시가 신규 고용 창출이 크지 않은 채 주택 공급지로서의 역할에 머무르게 됐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됐다. 고용 분산을 수반하지 않은 대량 주택 공급은 결국 서울 출퇴근을 위해 신도시 주민이 몰려드는 교통난의 원인이 됐다는 평가도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0년 5월 이른바 5·8조치를 발표한 뒤 청와대에서 국내 10대 재벌 총수들의 예방을 받고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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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송종호 기자 joist1894@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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