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향년 89세로 별세했다. 동서 냉전 체제와 권위주의 정권의 해체 움직임 등으로 국내외 정세가 요동쳤던 시절 5년 동안 대한민국을 이끌었던 고인의 명복을 빈다. 지병으로 오랫동안 병상 생활을 해온 노 전 대통령은 우연의 일치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일과 같은 날 세상을 떠났다.
군인 출신으로 대통령에 선출됐던 그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면서 공과(功過)를 논하지 않을 수 없다. 노 전 대통령이 육군 9사단장이던 1979년 12월 12일 육사 11기 동기생인 전두환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의 핵심으로서 군사 쿠데타를 주도한 것은 헌정 질서 파괴 행위로 용서받지 못할 잘못이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무력 진압과 수천억 원 규모의 비자금 조성 등도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할 과오다.
그러나 ‘북방 정책’은 평가할 만하다. 노 전 대통령은 냉전 체제가 해체되는 가운데 1989년 헝가리를 시작으로 1992년 중국·베트남과의 수교까지 45개국과 새롭게 국교를 수립했다. 여야의 초당적 협력을 바탕으로 ‘남북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기본합의서’를 채택하는 등 외교 안보 분야에서 성과도 냈다. 대선 후보 시절 직선제 개헌을 담은 ‘6·29선언’을 발표한 그는 취임 이후 6·10민주항쟁의 정신을 이어받아 입법·사법부의 자율성을 확대하고 지방자치제를 30년 만에 부활시키는 등 정치 발전에도 일조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단절되는 게 아니라 연속되는 것이다. 따라서 노 전 대통령의 잘못은 반면교사로, 잘한 점은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지금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 격화로 30여 년 전 해체됐던 냉전 체제가 다시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조국 사태’로 증폭된 이념과 노선을 둘러싼 사회 갈등이 더 커져서는 안 된다. 강한 국방력과 초격차 기술로 무장한 나라를 만들어야 경제도 살리고 안보도 튼튼히 할 수 있다. 그러려면 과거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되돌아보면서 정파·이념을 떠나 국민을 통합하며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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