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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지리산을 뛰쳐나온 반달가슴곰





환경부는 2002년 이래로 지리산에 반달가슴곰을 방생하여 그 개체수를 늘리는 사업을 진행해왔다. (…) 그런데 그 곰들 중 특별한 한 마리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이 곰이 김천에 있는 수도산으로 계속 도망을 간다는 것이다. 환경부 측은 왜 곰이 자꾸 80킬로미터나 떨어진 수도산으로 가려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입장이며, 이 곰을 잡아다가 다시 지리산에 풀어놓기를 반복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이 고집 센 곰은 포기하지 않고 또다시 수도산을 향해 달렸고, 버스에 치이는 사고까지 당했다. 결국 환경부는 이 집요한 곰에게 두손 두발 다 들고 말았다. 곰이 그토록 원하는 수도산에 살도록 내버려두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수도산에 살게 된 이 곰의 이름은 KM-53이다. (박보나, ‘태도가 작품이 될 때’, 2019년 바다출판사 펴냄)





미술가 박보나 작가는 사소한 태도와 관점의 차이로 대작을 만들어낸 예술가들을 탐사하는 이 책을 거창한 담론이 아닌 희한한 곰 한 마리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 기막힌 탈주곰은 오삼이 혹은 불사곰으로 불려왔다. 산 좋고 물 좋은 지리산을 떠나 그는 왜 그리도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했을까. 불사곰은 그후 백두대간 곳곳에서 발견되었고, 이 곰의 행보는 곧 반달가슴곰 생존의 새로운 기록이자 역사가 되었다. 박보나 작가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아무도 이해해주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살고 숨 쉴 곳을 아는 자만이 다른 삶을 살 수 있다고. 너무 무모해서 도망치다 붙잡히고 깨지고 피 흘릴지라도 그곳으로 끝끝내 가는 사람만이 이룰 수 있다고.

그런데 최근 이 불사곰이 수년 만에 지리산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연구자들은 짝짓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지만, 또 모를 일이다. 지리산에 눌러앉을 작정인 게 아니라 백두대간을 떠돌다 잠시 고향에 들러본 것일지도. 떠나든 머물든 불사곰의 자유다. 이 곰은 제 갈 길과 살 길을 안다.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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