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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관료, 야누스의 두 얼굴

김영기 논설위원

가계부채 심각성 알면서도 실기하고

누구도 총대 안메려는 님비현상 만연

집값 급등·투기광풍에 경제근간 흔들

관료들 최소한 소명의식 있는지 궁금

김영기 논설위원




공공선택학파 창시자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뷰캐넌은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상 자신의 이익을 우선한다고 봤다. 이 때문에 부처의 규모는 계속 커지고 재정은 적자에 빠진다는 것이다. 우리의 관료는 어떨까. 뷰캐넌의 이론이 옳다 해도 압축 성장 과정에서 관료들의 역할을 폄훼할 수 없다. ‘한강의 기적’을 이끈 오원철 전 경제수석부터 전두환 정권의 김재익 전 경제수석, 외환위기 당시의 이헌재 전 금융감독위원장,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의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까지. 한국 경제의 마디마디에는 뛰어난 관료들의 고민과 열정이 배어 있다. “관은 치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전직 관료의 발언이 뻔뻔하고 얄밉지만 역설적으로 보면 정책과 업무에 대한 자존심이 묻어난다.

정부의 가계부채 대책을 보며 오늘의 관료들을 생각해본다. 가계 빚이 화두가 된 것은 20년이 넘었다. 환란에 휩쓸려 신용불량자가 340만 명을 넘어선 후 가계부채는 경제의 암초가 됐고 역대 정부마다 주요 과제에 올렸다. 신용카드로 억지 부양을 하던 때를 제외하면 나름의 처방으로 가계부채가 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상황을 막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가계부채 정책은 끔찍한 수준으로 바뀌었다. 사실 글로벌 위기 이후 풀린 유동성은 현 정부 초기까지도 제대로 회수되지 않고 있었다. 정부는 처음부터 넘치는 돈을 거둬들일 시스템을 만들어야 했지만 이를 외면했다. 정권의 금융 홀대 속에서 가계부채 문제도 정책의 중심에서 멀어졌고 금융은 집값을 잡기 위한 땜질식 보조 기구로 전락했다. 코로나19 이후에는 돈을 더 쏟아부었고 환부는 커졌다. 물론 경제 위기 앞에서 링거는 고육지책이었고 이런 처방을 놓고 엉터리 의사라며 욕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이후다. 정부는 적어도 지난해 말 궤도를 바꿔야 했다. 각국의 정책 틀이 ‘포스트 코로나’로 향하던 시점에 가계부채 정책도 전환점을 찾아야 했다. 지난해 2분기 말 1,637조 원이던 가계 빚이 3분기 말 1,682조 원으로 늘었을 때, 아니 4분기 말 1,728조 원까지 올라서는 순간에도 기회는 있었다. 늦었지만 가계 빚에만 국한한 미시적 접근이 아니라 경제 전반을 아우르는 거시적 대응에 나섰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었다.

정부도 생각은 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사흘 앞두고 열린 부동산장관회의에서 ‘가계부채 관리 선진화 방안’을 올 1·4분기에 내놓겠다고 했다. 1분기는 은행들이 총량규제에서 벗어나 대출에 다시 시동을 거는 시점으로 이를 통제하면 효과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관료 집단 누구도 총대를 메지 않았다. 대출을 옥죄다 4·7 재보궐선거를 망칠까 봐 그랬는지 모르지만 가계 빚은 결과적으로 1분기에만 37조 원이 늘었다. 집값과 부채가 동시에 뛰는 최악의 국면을 정부 스스로 초래한 셈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선거 이후다. 재보선이 끝날 즈음 글로벌 경제에는 긴축론이 한창이었다. 우리도 하반기 기준금리 인상론이 불거졌다. 정부는 거시 정책의 큰 칼(금리 인상)을 꺼내기에 앞서 대출 억제를 위한 미시 수단을 먼저 동원해야 했지만 손을 놓았다. 하물며 암호화폐까지 투기 광풍이 부는데 관료들은 주무 부처를 맡지 않으려 핑퐁게임을 했다. 문제가 터지면 책임 추궁이 뒤따를 것으로 보고 ‘더러운 피’를 묻히지 않으려 한 것이다. 전형적인 ‘정책의 님비 현상’이다. 이런 와중에 욕을 먹더라도 가계부채 문제를 손대겠다고 나선 것이 지금의 금융 당국 수장이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말보다 허무한 것은 없다. 그럼에도 가계부채 정책은 몇 번을 되새겨도 아쉽다. 1년만 일찍 시동을 걸었어도 부채 규모가 단시일 내 100조 원 넘게 치솟지 않았을 것이고 집값이 ‘미친 수준’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만들고도 경제 수장은 ‘최장수’ 타이틀을 이어가고 금융 관료들은 공기업 수장으로 호의호식하고 있다. 그들은 이 순간 관료로서 소명 의식을 얼마나 느끼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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