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콘텐츠 시장의 변방이던 한국이 국내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사업자들의 격전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일찌감치 한국 시장에 자리 잡은 넷플릭스에 이어 디즈니의 ‘디즈니+’, 애플의 ‘애플TV+’ 등 글로벌 OTT들이 다음 달부터 국내 통신사들과 손잡고 ‘오리지널 콘텐츠’를 주 무기로 한국 시장의 문을 두드린다. 이에 맞서 웨이브·티빙 등 토종 OTT 업체들도 공격적인 투자로 오리지널 라인업을 늘리고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디즈니와 애플의 시장 참여는 당장 다음 달부터 치열한 콘텐츠 경쟁과 함께 국내 OTT 시장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글로벌 OTT의 ‘오리지널 콘텐츠’ 폭격의 포문을 여는 것은 다음 달 4일 서비스를 시작하는 애플TV+다. 애플TV+가 론칭과 함께 내놓는 야심작 ‘닥터 브레인’은 영화 ‘반칙왕’ ‘장화, 홍련’ ‘밀정’의 김지운 감독이 연출하는 첫 드라마로 이선균이 분하는 뇌과학자가 의문의 사건에 휘말린 가족들의 뇌에 접속해 의식과 기억을 모으는 이야기를 다룬 SF스릴러다. 오스카 수상자 윤여정과 한류 스타 이민호 주연으로 4대에 걸친 한국인 이민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화제의 드라마 ‘파친코’도 제작 중이다.
다음 달 12일 론칭하는 디즈니+도 예능 ‘런닝맨: 뛰는 놈 위에 노는 놈’을 시작으로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오리지널 드라마를 공개한다. 디즈니 측은 이미 제작사 스튜디오앤뉴와 5년간 콘텐츠 공급계약을 맺고 드라마 2편 제작비 660억 원을 투자한 바 있다. K팝 스타 강다니엘의 연기 데뷔작인 ‘너와 나의 경찰수업’, 역대 한국 드라마 중 최대 규모인 500억 원을 투자하는 강풀 웹툰 원작의 히어로물 ‘무빙’ 등을 준비 중이며 마블·스타워즈·디즈니 등의 해외 콘텐츠도 풍성하다.
올 한 해 5,500억 원의 투자 계획을 밝혔던 선두 넷플릭스는 다음 달 19일 선보이는 ‘지옥’을 앞세워 수성(守城)에 나선다.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이 초자연적 현상을 매개로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서늘한 시선으로 응시한 작품이다. 정우성 제작, 배두나·공유 주연으로 오는 2060년 달 탐사대의 이야기를 다루는 SF물 ‘고요의 바다’, 김태호 PD의 예능 ‘먹보와 털보’도 연내 공개 예정이며 ‘지금 우리 학교는’ ‘소년심판’ ‘종이의 집 한국판’ 등 수많은 드라마를 제작 중이다.
이 외에 워너브러더스의 ‘HBO맥스’, 아마존의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등의 한국 진출 가능성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글로벌 OTT 사업자들이 한국 시장으로 몰려드는 이유는 콘텐츠 시장에서 한국이 갖는 위상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시장은 아니지만 동남아시아 등 더 넓은 지역을 공략할 콘텐츠 제작 역량을 갖춘 시장인 데다 한국 내 반응이 글로벌 흥행의 가늠자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유건식 KBS공영미디어연구소장은 “마블 영화는 한국에서 먼저 개봉해 그 반응에 따라 글로벌 흥행 여부를 예상할 정도로 한국 시장을 비중 있게 본다”며 “OTT 콘텐츠 역시 한국에서 통하면 글로벌에서도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공룡들의 공세 앞에 토종 OTT들의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대표 주자는 SK텔레콤·지상파와 CJ ENM·JTBC를 각각 등에 업은 웨이브와 티빙이다. 당장 올해부터 웨이브는 5년간 1조 원, 티빙은 3년간 4,000억 원을 콘텐츠 제작에 투자한다.
티빙의 경우 연말까지 오리지널 드라마 ‘해피니스’, 시트콤 ‘이머전시’ 등을 선보이며 가입자 확대에 박차를 가한다. 내년에는 연상호 감독이 각본을 쓴 초자연적 스릴러 ‘괴이’, 이준익 감독의 첫 드라마 연출작 ‘욘더’ 등을 공개할 예정이다. 지상파 작품에 제작비를 투자해 방영권을 확보해온 웨이브도 오리지널 콘텐츠로 범위를 넓혀 정치 풍자 블랙코미디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임시완·손현주·고아성 주연의 드라마 ‘트레이서’를 각각 11월·12월 공개한다. 이 밖에 왓챠·쿠팡이 운영하는 쿠팡플레이 등 틈새시장을 노리는 OTT들도 오리지널 콘텐츠로 시청자 공략에 나선다. 이양환 한국콘텐츠진흥원 정책본부장은 “아무리 인기가 많고 지배적 사업자라도 킬러 콘텐츠가 없다면 가입자는 언제든 이탈할 수 있다”며 “자신들의 플랫폼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오리지널 콘텐츠가 경쟁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콘텐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파트너십의 중요성도 부각되고 있다. 넷플릭스는 지난 2018년 LG유플러스와 독점 제휴를 맺은 데 이어 지난해 KT와도 파트너십을 맺었다. 디즈니+와 애플TV+도 국내 이통사와 손잡고 시장 안착을 노린다. 디즈니+는 LG유플러스와 모바일 및 인터넷TV(IPTV) 제휴를, KT와는 모바일 제휴를 맺었다. 애플TV+는 SK텔레콤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와 손을 잡고 전용 셋톱박스에 ‘Btv’ 서비스를 탑재하기로 했다.
이에 맞서 국내 토종 OTT들도 경쟁력 확보를 위해 국내외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있다. 웨이브는 콘텐츠 라인업 강화를 위해 HBO 등 해외 메이저 스튜디오들과 협약을 맺었으며 네이버와 손잡고 사업 확장에 나섰다. 네이버플러스 멤버십과 티빙 결합 상품을 출시해 고객을 유치하고 네이버 자회사인 라인과 함께 내년에는 일본·대만 등 해외시장도 공략할 예정이다. 왓챠는 올 3월 딜라이브의 셋톱박스인 OTTv에 애플리케이션을 기본 탑재해 고객 접점 확대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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