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광물 수출 및 석유 수입 허용 등 대북 제재 해제를 한반도 종전 선언 논의를 위한 만남의 선결 조건으로 제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정보원은 28일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 같은 조건들을 거론했다. 정보위 여야 간사는 브리핑을 통해 “종전 선언을 논의하려면 만나야 하는데, 북한은 만남을 위한 선결 조건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문재인 정부는 내년 3월 대선 직전에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종전 선언에 매달리고 있다. 7박 9일간의 유럽 순방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은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면담 등을 활용해 종전 선언 홍보 외교에 온 힘을 쏟고 있다. 30~31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다음 달 1~2일 영국 글래스고에서 개최되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기간에 주요국 정상들과 만나 종전 선언 지지를 적극 호소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런 조급증에 미국조차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은 최근 종전 선언에 대해 “순서나 시기·조건에서 (한국과 미국 간) 다소 시각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이 27일 화상으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에서 종전 선언 지지를 당부했으나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여전히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관심이 ‘완전한 비핵화’에 있음을 명확히 한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종전 선언과 남북대화 이벤트에 집착하니 북측이 만만하게 보고 우리의 안보 태세를 흔들 수 있는 황당한 요구를 하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종전 선언이 이뤄진다면 김정은 정권은 곧바로 유엔사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할 것이다. 고장난명(孤掌難鳴)이라 했다. 한쪽만 나서서는 종전 선언은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전혀 없음이 모두에게 확인돼야 종전 선언도 가능해진다. 북측이 먼저 핵 시설·물질 신고를 포함한 핵 폐기 로드맵을 제시하고 도발 방지를 약속해야 진정한 평화 체제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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