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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칼럼] 냉전의식 부채질 말아야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CNN'GPS'호스트

美, 中 극초음속미사일 실험 놓고

과학·팩트 없는 억지 주장 쏟아내

막대한 예산 따내려는 펜타곤 속내

워싱턴 정가 피해망상증도 부추겨





파이낸셜타임스(FT)가 중국에서 지난 8월 극초음속 미사일 실험을 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물론 중국 정부는 이를 부인했다. 이와 관련해 마크 A 밀리 미 합참의장은 “지금이 스푸트니크 순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에 매우 가깝다고 생각한다”며 중국의 미사일 실험을 냉전시대의 중대 사건이었던 소련의 사상 첫 인공위성 발사에 비유했다. 하지만 중국의 미사일 실험은 스푸트니크와 아무 상관도 없을 뿐더러 그 같은 억지 주장을 펼치는 것은 요즘 한창 몸집을 불려가는 워싱턴 정가의 위험천만한 피해망상증에 먹이를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스푸트니크는 우주경쟁의 혁명적 사건이었다. 반면 극초음속 미사일은 해묵은 뉴스다. 극초음속 미사일은 마하 5 이상의 속도로 비행한다. 하지만 미국과 소련은 1959년을 기점으로 소리의 속도보다 20배나 빠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실전 배치했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독일이 파리를 겨냥해 처음 발사한 V-2 로켓도 초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비행했다.

스탠퍼드대의 과학자이자 이 방면의 전문가인 캐머런 트레이시는 극초음속 무기는 ICBM에 비해 비행 속도와 전자 탐지망을 피하는 은폐 기능 면에서 나을 바가 없다고 지적한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중국의 미사일은 타격 목표물에서 24마일이나 빗나갔다.

작가 겸 언론인으로 활동하는 프레드 캐플런은 중국의 미사일 테스트가 미국의 방대한 미사일 방어 체계를 무력화하려는 시도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수천억 달러를 퍼부은 미국의 미사일 방어 체계는 지난 여섯 차례의 시험에서 세 번이나 실패한 값비싼 애물단지다. 국방부가 2019년 3월 이후 테스트를 중단한 것은 아마도 이런 연유에서일 것이다. 설사 미사일 방어 체계가 적대국에서 발사한 미사일을 완벽히 조준한다 해도 상대방이 한꺼번에 미사일 두 발을 발사하는 비대칭적 조치를 취할 경우 속수무책이 되고 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논의에서 과학과 팩트가 힘을 쓰리라는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위험천만한 신냉전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양당의 공감대가 워싱턴 정가에 폭넓게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펜타곤으로서는 첨단 기술로 무장한 거대한 적에 대한 공포심을 한껏 부추겨 그들의 움직임에 일일이 맞대응하는 데 필요한 막대한 추가 예산을 따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신냉전이라는 피해망상증은 이미 워싱턴 밖으로 퍼진 지 오래다. 최근 국제 관계 평론지인 포린어페어스는 지난 40년간 줄기차게 중국을 다독여온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에게 쓴소리를 날린 저명한 현실주의 학자 존 미어셰이머의 에세이를 게재했다. 미어셰이머는 대등한 반열에 들어선 경쟁국을 적극적으로 격려하는 것은 핵 대결을 포함한 열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신냉전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현실주의 논리는 그게 끝이다. 현실주의 제사장인 케네스 왈츠는 일단 냉전이 끝나면 일본은 국가 안보를 더 이상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핵무장을 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미어셰이머는 또 냉전이 종식되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붕괴할 것이고 유럽은 이 지역 국가들이 아귀다툼을 벌이는 각축장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유럽 국가들, 특히 독일이 핵무장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이런 예언은 모조리 빗나갔다. 사실 유럽연합(EU)은 냉전 이후 수십 년 동안 회원국 간의 결속력을 높이며 더욱 강성해졌다. 게다가 일본 역시 비핵화를 고수했다.

필자가 이 같은 사실을 거론하는 이유는 미어셰이머가 ‘힘의 정치’를 국제 무대에서 국가를 움직이는 유일한 동력으로 꼽았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긴밀한 경제적 상호 의존처럼 힘의 정치와는 완전히 결이 다른 국제 관계의 주요 동력이 적지 않다. 중국을 포함한 오늘날의 세계는 복잡한 글로벌 경제 시스템의 촘촘한 그물 안에서 긴밀히 연결돼 있다. 이 같은 시스템 안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국가는 피해국과 거의 동일한 정도의 타격을 받게 된다.

미국 외교정책의 과제는 전통적인 ‘힘의 외교’가 중국의 팽창주의를 억제하는 데 유용하다는 사실과 함께 글로벌 경제체제 안에서의 국가 간 상호 의존성 역시 무모한 도발을 효과적으로 억제한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미국은 이 두 가지 도구를 동시에 사용해야 한다. 이 같은 접근법은 겁주기와 무력시위보다 실행하기가 훨씬 까다로운 게 사실이지만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지켜주는 한층 정교한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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