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 국가들이 기후변화 대응의 일환으로 앞다퉈 원자력발전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미국에 이어 전력 부족으로 에너지 위기에 처한 프랑스·영국·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들도 잇달아 방향을 틀어 원전 건설을 검토 중이다. 동일본 대지진 등 원전 사고로 큰 피해를 입었던 일본조차 전면 중단했던 원전을 폐기하지 않고 재가동해 원자력발전 비중을 늘린다는 입장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오는 2050년까지 전 세계에 최대 1,000기의 소형 원전이 건설되고 시장 규모는 400조 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은 원자력발전을 청정에너지 전환 수단으로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IAEA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전(93기)을 운용하고 있는 미국은 2기를 추가로 짓고 있다. 조 바이든 정부는 또 차세대 원자로 기술과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에 7년간 32억 달러(약 3조 6,000억 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아이다호주에는 600㎿급 중소형 원전 12기가 새로 건설될 예정이다.
미 의회는 올해 예산 중 소형 원전을 포함한 첨단 원전 연구개발 비용으로 15억 달러를 책정하는 등 산업 육성에 나섰다. 이에 따라 기업들도 소형 원전 건설에 뛰어드는 상황이다.
에너지 대란에 신음 중인 유럽에 원전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국가 안보 측면에서도 원전을 통해 전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자체 SMR 기술 개발과 원전 폐기물 관리 개선에 10억 유로(약 1조 3,800억 원)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20년 넘게 원전 건설을 중단했던 영국도 정책 방향을 돌렸다. 영국 정부는 ‘넷제로(탄소 배출량 0)’ 전략 보고서에서 탄소 배출 절감을 위한 핵심으로 원전을 지목하고 2050년까지 약 45조 원을 투자해 SMR 16기를 건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웨일스 북부 지역에 신규 원전 건설을 비롯해 그간 중단됐던 원전 건설을 재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네덜란드도 국가전력수급방안에 원전 발전 병행안을 포함시키고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하기로 했다. 탈원전을 추진해온 독일에서도 에너지 가격 급등 사태를 겪으며 원전 확대 여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일본에서도 원전 확대와 SMR 도입론이 나온다. 공약에 SMR 투자 지원을 내세우며 선거 전부터 원전의 중요성을 언급해 온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2030년까지 전체 발전량 중 원전의 비중 목표치를 20~22%로 유지하기로 하는 새 에너지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2011년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를 계기로 전면 중단했던 원전은 재가동될 예정이다. 이번 계획에 경제계가 요구한 원전 신규 증설 계획은 포함되지 않았지만 2019년 기준 일본의 원전 비중이 6%인 점을 고려하면 원전 비중이 늘어나는 셈이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원전 반대 여론이 큰 탓에 당장 원전 신설은 어려워 보이지만 자민당이 이번 중의원 선거에서 단독 과반은 물론 절대 안정 의석수를 확보하면서 원전 추진의 동력이 생겼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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