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미 공군이 후원하는 국방 저널 ‘전략 연구(Strategic Studies Quarterly)’에는 중국 원자력발전소의 위상을 실감하게 하는 연구 결과 하나가 실렸다. 지난 2000년 이후 전 세계 13개 나라에 건설된 총 96기 원자로 가운데 절반가량인 45기가 중국에 지어졌다. 또 각국에 건설 중인 50여 기 원자로 중 20기에 중국 또는 러시아 원전 기술이 적용됐고 중국이 단독 설계한 것만도 13기나 됐다. 미국의소리(VOA)는 “중국은 이미 세계 최고 핵에너지 공급자로 부상했다”고 논평했다.
탄소 감축 계획에 원전 ‘팽창’ 의지 담아
이미 원자로 52기를 운영 중인 중국이 오는 2035년까지 1년에 10기꼴로 총 150기를 추가할 경우 세계 1위인 미국(93기)을 가볍게 제치게 된다. 물량 ‘파상 공세’로 압도적인 원전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다. 전 세계 원자로 3분의 2가 30년 넘게 가동된 노후 원전인 상황에서 신형 원자로는 말 그대로 중국산이 장악하는 것이기도 하다.
중국은 수년 전부터 ‘원전 굴기’를 앞세우고 서방 원전 강국을 무서운 속도로 따라붙었다. 중국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세계적인 탈(脫)탄소 흐름을 역전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태세다. 석탄·천연가스 등 화석연료보다 탄소 배출이 훨씬 적은 원전은 탄소 중립 달성에 주요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과 프랑스·영국 등 주요국들은 일제히 자국 원전 확대를 선언했다. 이런 분위기는 중국에 절호의 기회다. 과거 같으면 원전 확대가 ‘핵무장을 강화한다’는 국제사회의 눈총을 받았겠지만 이제는 ‘기후 위기에 적극 대처한다’는 논리를 중국이 펼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 맞춰 지난달 발표한 ‘2030년 탄소 배출 정점 행동 방안’에서도 “원전을 적극적이고 안전하며 질서 있게 발전해 나가겠다”는 점을 명시했다. 또 “원전 표준화·국산화를 가속하고 원전 장비 제조 산업을 육성하겠다”고도 강조했다. 탄소 중립을 명분으로 원전 ‘팽창’ 의지를 재차 밝힌 셈이다.
중국 원전은 철저한 국가 주도 발전을 해왔다. 중국 원전의 ‘가격 경쟁력’이 이를 잘 나타낸다. 중국핵전집단공사(CGN) 같은 국영 원전 기업은 원전을 지을 때 1%대 매우 낮은 금리로 역시 국영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블룸버그는 “중국 원전 건설 비용은 ㎾ 당 3,000달러(약 354만 원)가량”이라며 “이는 미국이나 프랑스 건설 비용의 3분의 1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美·英 집중 견제에도 해외 수주 싹쓸이
중국 원전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완공된 푸칭 원전 5호기는 중국이 독자 개발한 3세대 원전 기술인 ‘화룽 1(HPR 1000)’이 적용됐다. 푸칭 원전 5호기는 핵심 부품의 국산화율이 90%에 육박한다. 중국은 이어 올해 말에는 4세대 원전 기술로 꼽히는 200㎿급 초고온가스로(VHTR)를 본격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낮은 단가에도 수준급인 기술력은 중국이 러시아와 더불어 해외 원전 수주를 ‘싹쓸이’하는 원동력이 됐다. 원전 업계에 따르면 현재 중국은 세계 37개국과 원자력 협력을 체결한 상태다. 특히 인프라 프로젝트인 ‘일대일로’에 원전 사업을 접목, 공격적인 원전 확장 정책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 원전의 성장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과 유럽은 견제 수위를 높였다. 2019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는 자국 기술을 탈취했다며 CGN을 제재 대상에 올랐다. 영국도 같은 이유로 현재 진행 중인 시즈웰 C 원전 건설 건에서 이미 계약을 끝마친 CGN을 배제시켜버렸다.
서해에 70기 밀집... 韓 위협
중국은 이미 가동 중인 것과 건설 중인 것을 포함, 총 70기의 원전을 동해안에 몰아넣었다. 냉각수가 필수인 원전의 특성 탓이다. 새로 추가되는 150기도 동해안을 따라 건설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안전에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국은 최근 발표한 탄소 감축 방안에도 해상 부유식 원전을 동해상, 우리로 치면 서해상에서 운영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한국 정부로서는 군비 늘리듯 원전을 증설하는 중국에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 안전 보장 방안을 마련하라’고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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