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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 "난 모험이 좋다…용감하거나 무식하거나 둘중 하나"

■ 英 가디언지와 인터뷰

뻔한 스토리, 평범함에 재미 못느껴

영화계 데뷔 후 파격적인 작품 맡아

힘든 시기에도 작은 역할부터 도전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난 이상한 모습이었을 겁니다. 좋은 쪽으로. 현대적이고 순종적이지 않은 모습 말입니다."

영화 '미나리'로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윤여정(74·사진) 씨가 4일(현지 시간) 영국 가디언지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나는 한국에서 미의 기준이 아니다. 여배우가 되려면 외모가 출중해야 하고 연기는 상관없었다"며 이같이 자신을 평가했다.

현재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머물고 있는 윤씨는 인터뷰에서 "내 문제는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배우 세계에 처음 들어선 것도 우연이었다”고 되돌아봤다.

윤씨는 1947년 북한의 개성에서 태어났고 6·25전쟁 이후 남쪽으로 내려와 학교에 다녔다. 1960년대 후반 서울에서 어린이 프로그램을 촬영하는 TV 스튜디오를 방문했는데 당시 진행자가 관객들에게 선물 받는 것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큰돈을 받았고 그다음 주에는 오디션을 봐 통과했다. 몇 달 만에 프로그램 주연 자리까지 꿰찼다.



가디언은 윤씨가 걸었던 배우의 길은 우연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윤씨는 1971년 TV 드라마 '장희빈'의 주연으로 안방극장에 이름을 알린 후 영화계에서 러브콜이 쏟아졌지만 대부분 거절했다고 한다. 그는 “보통 가난한 여자가 부자 남자를 만나 가족의 반대로 결혼이 이뤄질 수 없는 내용이었다”며 "다 똑같아서 재미가 없었다"고 했다.

이후 김기영 감독을 만나 같은 해 ‘화녀(1971)’로 영화계에 성공적으로 데뷔한다. '화녀' 설정은 오늘날 기준에 비춰봐도 파격적으로 간통·강간·낙태·살인·자살, 심지어는 쥐 떼까지 등장한다. 그러면서도 한국 사회의 계급 차이와 가부장적 전통을 꼬집는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윤씨는 이후 ‘충녀(1972)’에도 출연하며 선정적이지만 사회적 메시지로는 가볍지 않은 작품을 이어갔다. 윤씨는 당시 남성 중심의 한국 사회에서 솔직하고 열정적인 모습으로 독립적인 새 한국 여성상을 나타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윤씨는 가수 조영남 씨와 이혼한 뒤 다시 커리어를 쌓아나갔다. 그러나 당시 보수적인 한국 사회 분위기상 '이혼녀'라는 딱지 때문에 처음에는 영화 제작자들이 일을 주기를 꺼렸다. 하지만 윤씨는 좌절하지 않고 작은 역할부터 시작했다. 그는 "어떤 역할인지는 상관하지 않았다”며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냥 일했다"고 말했다. 이후 ‘바람난 가족(2003)’ ‘하녀(2010)’ ‘죽여주는 여자(2016)’에서 파격적인 역할을 선보였다. 윤씨는 이런 역할이 두렵지 않다며 "내 삶이 아닌 누군가의 삶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가디언은 윤씨가 항상 새로운 것에 목말라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난 모험이 좋다. 아주 용감하거나 무식하거나 둘 중 하나"라며 "그렇지만 모든 것을 다 알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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