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에서 역사가 오래 된 분쟁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다. 가자지구를 폭격하는 이스라엘 전투기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 그로 인한 인명 피해에 관한 소식은 수십 년째 시도 때도 없이 국제뉴스를 장식해 왔다. 불과 6개월 전에도 양측의 갈등이 불을 뿜으면서 300명 가까운 팔레스타인인과 12명의 이스라엘인이 숨졌다. 그런데 중동의 ‘화약고’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그저 양측의 ‘충돌’로만 소비된다. 같은 땅에 대해 각자 권리가 있는 두 민족 사이에 벌어진 충돌이라는 시각이다.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인 중동 문제 전문가 라시드 할리디 뉴욕 컬럼비아대 교수는 신간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에서 이러한 시선에 반박한다. 그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본질이 ‘정착민 식민주의’이며, 양측의 무수한 유혈 충돌이 식민지 전쟁의 일환이라고 단언한다. 유럽인이 아메리카 대륙에 건너와 원주민인 인디언을 학살하고 미국을 건국했듯이, 미국·영국 등 열강을 등에 업은 시온주의가 팔레스타인 원주민을 몰아내고 새로운 정착민을 몰고 왔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19세기부터 시작된 시온주의의 몇 가지 특징은 식민주의적 성격을 드러낸다. 시온주의 창시자인 헤르츨이 원주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유대인의 안녕과 부를 위해 노력하면 팔레스타인 주민의 안녕과 재산도 늘어날 것’이라고 약속한 말이 전형적 식민주의 논리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후로도 시온주의는 원주민의 정체성과 문화를 부정하고, 원주민의 경제력과 인구를 희생시키는 급진적 사회공학을 도입했으며, 무자비한 폭력과 응징을 가하는 등 식민주의적 특징을 내보였다.
책은 1917년부터 2017년까지의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사를 일일이 개괄하는 대신 여섯 가지의 선전포고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우선 1917년 영국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을 위한 민족국가 수립을 지지한다”고 한 밸푸어 선언부터 1948년 이스라엘 건국, 1967년의 중동전쟁과 이스라엘의 점령을 인정한 안보리 결의 242호를 언급한다. 이어서 1982년 벌어진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 1988년부터 1993년까지 나타난 1차 인티파다(봉기), 2000년 2차 인티파다 이후 계속되는 전쟁 상황까지 포괄한다.
할리디 교수는 책 속에서 100년 간의 역사를 거시적으로 짚는 데 그치지 않고 개인적 경험과 인연이라는 미시적 요소를 이야기에 녹여냈다. 2차 인티파다가 일단락된 2000년대 중반 이후 이스라엘이 지상군을 앞세워 팔레스타인 지역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그의 친동생은 이스라엘군의 불도저에 요르단강 서안의 집을 잃고 만다.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에 관한 대목에서는 저자가 직접 현장에 10주 동안 머물면서 물과 전기, 식량이 부족한 극한 상황에 처한 아이들을 돌본 경험을 전한다. 이야기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것은 팔레스타인 명문가 출신인 그의 친족들이 역사의 현장에서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지켜본 경험들이다. 할리디 교수의 아버지 이스마일 알할리디는 19년 간 유엔 정치사회이사회국 소속으로 일했고, 아랍과 이스라엘이 충돌할 때마다 사무총장을 보좌하며 안보리 회의의 실무를 맡았던 인물이다. 덕분에 저자도 1967년 중동전쟁 당시 휴전 교섭 현장에 함께 있을 수 있었고, 그 경험을 토대로 당시의 막전막후를 책에서 전한다.
책은 19세기부터 현재까지 팔레스타인을 이끈 엘리트들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하마스 등 모든 지도부도 강도 높게 비판한다. 이들 모두 당대의 정세를 읽지 못한 채 내부 분열과 무모한 저항에만 몰두했으며, 그로 인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물론 세계 여론을 움직이는 데 실패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는 100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팔레스타인 땅에 자리를 잡은 유대인의 민족적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의 서사에 맞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고 주변 아랍인과 세계 여론은 물론 이스라엘 여론에도 호소하여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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