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연주는 제게 직업이 아닌 보람찬 취미입니다.”
일로 피아노를 치고 싶지 않다는 24세 청년은 최근 한 달 사이 세계 곳곳을 돌며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10번 이상 연주하고 있다. 바로 ‘2021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중국계 캐나다인 피아니스트, 브루스 리우(Bruce Liu·사진)다. “풀 마라톤을 뛰는 것 같은” 숨찬 시간들이지만, ‘해야 하는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이기에 매번 무대에 기꺼이 헌신하며 건반을 마주하고 있는 그가 오는 27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서울시립교향악단과의 ‘쇼팽 콩쿠르 스페셜’ 협연자로서 첫 내한 무대에 선다. 지난달 콩쿠르 우승 후 폴란드와 일본에 이어 이스라엘 공연을 마친 뒤 잠시 캐나다 자택에 머무르고 있는 그는 18일 온라인 화상 인터뷰를 통해 “팬데믹으로 해외 이동이 어려운 시점에 우승 곡과 함께 한국을 처음 방문하게 돼 기쁘다”며 기대감을 전했다.
‘브루스 샤오 유 리우’. 지난달 21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 필하모닉 콘서트홀에서 심사위원의 우승자 호명에도 이름의 주인공은 한동안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브루스는 “전혀 (우승을) 예상하지 못했다”며 “오히려 발표 직후 갈라 콘서트에서 쳐야 하는 곡(피아노 협주곡 E단조 11번)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 생각이 컸다”고 털어놓았다.
쇼팽 콩쿠르는 쇼팽의 곡만으로 모든 경연을 치른다. 전 세계 젊은 음악가들은 이 대회를 앞두고 쇼팽을 파고들며 실력을 닦고 또 닦는다. 하지만 브루스는 일부러 다른 작곡가의 곡을 많이 연주했다. 그는 “팬데믹으로 콩쿠르가 (2020년에서) 1년 연기됐기 때문에 연주의 영감이나 신선함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며 “이 기간에 생소한 음악을 더 공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시아 최초의 쇼팽 콩쿠르 우승자이자 브루스의 스승인 당 타이 손도 되도록 제자가 다양한 작곡가의 작품을 경험하도록 가르쳤다. 브루스는 “많은 작품을 배우면서 연주자 자신을 더 알게 된 뒤에 어디에 집중할지 정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세 차례의 본선과 마지막 결선에 이르기까지 본인이 가장 만족했던 공연은 3차 본선(준결선)에서 친 ‘돈조반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다. 이 무대는 ‘연주자의 개성과 새로운 해석이 느껴졌다’는 극찬 속에 결선의 쇼팽 협주곡 1번 못지않게 주목을 받았다. 오는 12월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발매될 콩쿠르 라이브 CD의 마지막도 이 곡이 장식하는데 이에 대해 브루스는 “대단히 만족한다”며 웃어 보였다.
그의 이름 앞엔 앞으로 꽤 오랜 기간 ‘쇼팽’이란 단어가 따라붙을 터다. 이미 꽉 찬 2년의 일정 중 상당 부분을 쇼팽의 작품과 함께해야 하지만, 24세의 젊은 연주가는 지금껏 그래 왔듯 더 많은 작곡가의 음악을 공부하며 자신을 알아가고 싶다고 했다. 코르토, 프랑수아, 미켈란젤리 등 전설적인 ‘거장’들의 연주에 매료된 연주자임과 동시에 카레이싱과 수영을 즐기고 영화와 친구를 사랑하는 젊은이다. 휴식이 필요해 집에 잠시 돌아온 것을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는 그에게 ‘지금 하고 싶은 일’을 묻자 “잠이요. 12월에는 꼭 친구들과 파티를 하고 싶네요” 라는 답이 돌아왔다.
내한 무대에서는 결선곡인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들려줄 예정이다. 이날 공연은 네이버를 통해 온라인으로도 유료 생중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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