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공조를 다지기 위한 외교차관 회의에서 한일 간에 독도 문제로 불협화음이 발생했다. 모리 다케오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이 김창룡 경찰청장의 독도 방문을 문제 삼으며 예정된 한미일 공동 기자회견을 돌연 거부한 것이다. 과거사 문제로 냉각 상태였던 한일 관계에 독도까지 부각되며 관계 개선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8일 외교부에 따르면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은 17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 모리 차관과 한중일 외교차관 회의를 진행했다.
한미일은 이 자리에서 종전 선언 등 대북 관계 공조는 물론 코로나19와 기후 대응, 공급망 재편 등에 대한 의견도 교환했다. 미국은 또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 보장과 대만해협의 평화·안정 유지 등에 대한 입장도 공유했다. 한중일 차관 회의는 원만하게 이뤄졌는데 문제는 그 이후에 터졌다. 모리 차관이 돌연 예정된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이다. 김 청장의 독도 방문에 대한 일본 정부의 항의 차원이라는 설명이었다. 이로 인해 최 차관도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고 결국 셔먼 부장관만 홀로 나왔다. 최 차관은 한일 차관의 불참과 관련해 “개최국인 미국이 단독 회견을 통해 한미일 차관 협의의 결과를 공개하는 데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한일 양자 회담은 이날 예정대로 진행했다. 한일 차관은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경색된 양국 관계를 해소할 만한 의견을 교환하지 못했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등에 대한 우려를 전했고 일본은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적절한 대응을 요구했다. 이는 양국 간 일방적 관심사만 전달한 것으로 기존 입장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외교 전문가들은 한일 간 경색 국면이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내다봤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일본 기시다 내각의 입장이 이번 회담에서 명확히 드러났다”며 “일본은 강경 입장을 계속 유지할 것으로 보이며 경색된 한일 관계를 돌파할 마땅한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한일 갈등이 재부각되면서 한미일 3각 공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미국은 대중 견제를 위해 한미일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한일 간 관계 회복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미국 역시 3각 동맹보다 한미·일미 등 각개 동맹 체제로 무게중심을 옮길 수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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