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말 국정수행 지지도가 이례적으로 40% 안팎을 기록하는 가운데 이 지지율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온전히 옮겨가지 않은 이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를 두고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와 겪은 불화,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로의 진보진영 표 분산, 확대재정 공약에 대한 반감 등이 겹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에 뒤처졌다는 결과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의 지지율만이라도 이 후보에게 모두 전달되면 대결 구도는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 문 대통령의 행보에 따라 차기 대선 흐름이 바뀔 여지가 아직 충분하다는 것이다. 가깝게는 이달 21일 문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가, 멀게는 확진자 폭증 국면에서의 단계적 일상회복·방역 대응, 북한·미국·중국과의 종전선언 추진 등이 각각 변수로 꼽힌다.
이철희 “지지율 40%는 ‘문재인 효과’...부패 않고 오직 일만 해”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은 16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문 대통령의 임기 말 높은 지지율에 대해 “정부에 참여했거나 현재 몸 담고 있는 모든 분들, 밖에서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시는 분들, 지지해주시는 국민들의 덕”이라고 평가했다. 이 수석은 “좁혀서 보면 문재인 효과”라며 “(문 대통령은) 바르고 착한 대통령”이라고 부연했다.
이 수석은 이어 “많은 분들이 인정하듯 한 눈 안 판다. 부패하지 않고 권력의 단 맛에 취하지 않고 오직 일만 하시는 대통령”이라며 “국민들이 그런 점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가 싶다”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개인적 소망은 ‘문전박대’”라며 “대통령이 퇴임하기 위해서 문 앞에 섰을 때 박수 받으면서 떠나는 대통령이 되면 좋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 딸 다혜 씨가 청와대에 거주한다는 언론보도를 둘러싼 야당의 문제 제기에 대해서는 “과하다”며 “대통령이란 자리가 굉장히 스트레스도 많고 힘든 자리다. 대통령이 평상심을 가지고 좀 더 밝고 유쾌한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게 하는 조건이라면 충분히 양해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반박했다. 이 수석은 “특정 집안의 가정 내부와 관련된 것이 위법하거나 국민들에게 불편함을 끼치는 게 아니라면 보호해 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며 “우리 정치가 지나치게 험하고 거칠어져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안 해야 될 얘기, 짚어야 되지 않을 영역까지 과도하게 개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수석은 야당의 대통령 탈당 요구에 대해서도 “과거의 잘못된 관행”이라며 선을 그었다. 그는 “대통령에게 당적을 이탈하라고 하는 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치 책임 관점에도 맞지 않는다”며 “과거에는 대통령이 정략적 의도로 탈당한 경우들도 있었다. 책임정치 차원에서는 대통령이 당적을 가져야 된다”고 반박했다. 또 “미국 대통령은 선거 유세도 돌아다니면서 하지 않느냐”며 “그 당의 후보를 지원하는 유세까지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는 못하더라도 책임정치, 정당정치의 관점에서 당적을 유지하는 건 필요한 관행이고 앞으로도 그렇게 가야 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 지지율 아직도 최대 44%…이재명·민주당보다 높아
실제로 문 대통령 지지율은 최근까지도 40% 안팎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이는 전임 대통령들과는 분명히 다른 흐름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YTN의 의뢰를 받아 지난 8~12일 조사한 결과(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2.0%포인트)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답변은 전주보다 3.1%포인트 상승한 37.3%(매우 잘함 19%, 잘하는 편 18.3%)를 기록했다. 부정적으로 답한 비율은 4.0%포인트 하락한 58.9%(매우 못함 44.3%, 못하는 편 14.5%)였다. 요소수 품귀 논란이 잦아든 효과였다.
지역별로는 광주·전라(10.5%포인트), 대전·세종·충청(7.9%포인트)에서 긍정평가가 대폭 개선됐다. 연령별로는 20대(5.2%포인트), 40대(7.9%포인트), 70대 이상(5.3%포인트)에서 지지율이 올랐다.
문 대통령 지지율은 이 후보나 민주당 지지도보다 더 높은 수준이었다. 같은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28.5%로 국민의힘 지지율(42.5%)은 물론 문 대통령 지지율조차 밑돌았다. 이 후보 지지율 역시 5자 가상 대결에서 34.6%를 기록, 윤 후보(44.4%)와 문 대통령 지지율에 모두 못 미쳤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4개사(전국지표조사)가 8~10일 조사한 결과에서는 문 대통령 지지율이 일주일만에 5%포인트나 상승하며 44%에 도달했다. 이는 같은 조사에서 이 후보가 4자 가상 대결 시 기록한 35%의 지지율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이었다.
각 여론조사마다 40%를 넘나드는 문 대통령 지지율과 달리 이 후보는 다른 조사에서도 40% 지지율을 넘긴 적이 없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지난 12~13일 실시한 여론조사와 한국갤럽이 머니투데이 더300 의뢰로 8~9일 진행한 조사에서는 모두 32.4%를 기록했다. KSOI 조사에서는 양자 가상 대결에서조차 36.0% 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 후보 지지율은 피플네트웍스리서치(PNR)가 뉴데일리·시사경남 의뢰로 12~13일 실시한 조사에서도 32.2%에 그쳤다. 조원씨앤아이가 스트레이트뉴스 의뢰로 6~8일 조사한 결과에서도 32.3%를 기록했다.
16~18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도 이 후보의 지지율은 31%로 문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 평가(34%)보다 낮았다. 해당 조사에서 문 대통령 지지율이 6개월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었음에도 이 후보는 이조차 모두 흡수하지 못했다. 각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치명적 측근 비리 없고 정책마다 호남·40대 등 ‘지지층’ 의견 중시
문 대통령의 임기 말 지지율이 역대 최고 수준에 이른 것은 치명적인 측근 비리가 그나마 없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과거 대통령들의 경우 임기 말 각종 비리와 구설수로 여지없이 지지율 하락세를 보였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충남 연기군 관권부정선거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차남 김현철 씨 뇌물수수 사건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홍일·홍업·홍걸 등 이른바 ‘홍삼 트리오’ 세 아들의 비리 연루 의혹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바다이야기와 친형 건평 씨의 땅 투기 의혹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의 저축은행 비리 사건으로 각각 내리막길을 걸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아예 임기도 못 채운 채 탄핵을 당했다.
이에 비하면 문 대통령의 경우 2인자 등 최측근이라 할 만한 사람을 곁에 두지 않은 점이 유효했다는 평가다. 야당이 아들 준용 씨에 대한 정부 지원금 특혜 의혹, 딸 다혜 씨에 대한 청와대 관저살이 의혹 등을 제기했지만 이들은 대규모 권력형 비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지지율에도 영향이 작았다.
문 대통령 지지율 선방의 또 다른 비결은 철저한 ‘지지자 챙기기’에도 있다는 평가다. 문 대통령은 적폐청산, 검찰개혁, 부동산 규제, 대북정책 등 각종 국정 과제를 추진하는 데 있어 호남·40대로 대변되는 핵심 지지층의 의견을 임기 내내 거의 거스른 적이 없다. 국민 과반이 반대하는 정책이라도 핵심 지지자들이 집중된 지역·세대에서만 찬성 여론이 많으면 이를 대부분 실현했다.
지지층의 의중을 우선시하는 문 대통령의 성향은 역설적이게도 8월13일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 가석방 때 가장 잘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이 부회장 사면·가석방 찬성 여론은 올 초부터 각종 조사에서 70% 안팎을 기록할 정도로 높았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이 부회장 가석방 직후 매우 이례적으로 누군가에게 양해를 구하는 메시지를 냈다. 국민적 동의율이 훨씬 더 낮았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나 소득주도성장, 부동산 규제 등을 추진할 때에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이 부회장의 가석방에 반대하는 국민의 의견도 옳은 말씀”이라며 “국익을 위한 선택으로 받아들이고 ‘국민들’께서도 이해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에게 70%의 국민 만큼, 혹은 그보다 더, 나머지 30% ‘국민들’의 의견이 소중했다는 방증이었다.
가덕도신공항 특별법 관련 지역 여론과 정부 결정 간 괴리도 특이 사례로 꼽힌다. 가덕도신공항은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문제였음에도 특별법에 찬성한 지역은 호남뿐이라는 여론조사가 나왔다.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올 2월26일 가덕도신공항 특별법 통과를 놓고 벌인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4.4%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잘못된 일이다’라는 응답은 53.6%로 ‘잘된 일이다’라는 응답 33.9%를 압도했다. 부산·울산·경남에서조차 54.0%가 ‘잘못된 일’이라고 응답하는 등 대다수 지역이 반대 입장을 냈다. 광주·전라 지역에서만 52.0%가 ‘잘된 일’이라고 답했다. 연령별로는 모든 세대가 부정 평가를 내렸고 그중 40대의 긍·부정 격차가 그나마 작았다. 정부·여당이 받든 ‘특별법 민심’은 4·7 부산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민주당의 참패로 귀결됐다.
DJ·盧와도 전혀 다른 지지율 관리…방역·종전선언으로 반전 노릴 듯
문 대통령의 이 같은 국정운영 방식은 같은 민주당계 지도자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과도 크게 다르다는 분석이다. 노 전 대통령의 경우 ‘대북송금 특별검사’ 수용, 이라크 자이툰 부대 파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 지지층이 극렬히 반대하는 결단을 수차례 내렸다.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을 한다’는 비판도 이때 나왔다. 호남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당선됐음에도 ‘지역주의 타파’라는 가치관을 우선하며 “전라도 국회의원들과는 정치 못해먹겠다”와 같은 발언도 서슴없이 했다. 노 전 대통령은 결국 임기 말 양쪽 진영 모두의 비판을 받았다.
김 전 대통령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지지자들을 아예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갔던 지도자다. DJT 연합 결성,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사면 건의,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 일본 대중문화 개방, 신자유주의 수용 등은 문 대통령이나 다른 후배 민주당계 정치인에게는 상상도 못할 결단들이었다. 김 전 대통령이기에 지지자들의 반발이 최소화됐다. 김 전 대통령은 각종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핵심 지지층의 찬반 여론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자신이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충성 지지자들은 결코 이탈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은 외려 당시 지역 구도로 갈라졌던 정치 지형 속에서 외연을 넓히는 전략에만 집중했다. 노 전 대통령, 문 대통령, 이 후보 등도 따지고 보면 김 전 대통령의 외연 확장이 낳은 결과물이다. 다만 김 전 대통령의 동진·포용 정책에도 당시 지역 대결 구도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독특한 지지율 관리 비법은 이전 대통령들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은 성과일 수 있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 개인적으로도 2012년 대선에서 호남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가 2016년 4월 총선에서는 ‘반문 정서’로 나락에 빠질 뻔한 경험이 있다. 문 대통령은 당시 광주에 내려가 “호남이 지지를 거둔다면 정계를 은퇴하고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언까지 했다. 민주당이 예상 외로 수도권에서 크게 선전하며 제1당으로 올라서는 바람에 문 대통령의 약속은 스리슬쩍 없던 일이 됐지만 전통적 지지자들의 표심은 국민의당으로 향했다. 이 같은 민심은 이듬해 대선으로도 이어져 문 대통령은 민주당계 대선 후보로는 처음으로 호남에서 50~60%대 지지를 얻는 데 그쳤다. 문 대통령이 전통적 지지층을 모두 규합한 건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였다. 국민의당이 이합집산한 효과도 있었다.
문제는 문 대통령이 진영 결집으로 취합한 현 지지율을 정권 재창출에도 보탤 수 있느냐다. 앞서 짚은대로 모든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지지율 중 일부는 이 후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문 대통령은 자칫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5년만에 정권 교체를 ‘당하는’ 지도자로 남을 위기에 처했다.
청와대와 여당은 당분간 반전의 계기를 만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대선을 100여 일 앞둔 21일 ‘국민과의 대화’도 그 일환으로 해석된다. 민주당이 최근 열린민주당과 합당 논의에 착수한 것도 그 연장선 위에 있다. 청와대와 정부가 올 연말, 내년 초께 새로운 방역·대북정책 성과를 내놓느냐도 관심사다. 눈앞의 진보 진영 지지세부터 확실히 모아야 중도 확장도 꾀할 수 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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