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증시는 10년 만기 국채금리가 어제에 이어 또 오르면서 나스닥이 0.50% 하락했습니다. 반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과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상승하면서 상반된 모습을 보여줬는데요. 이날 10년 물 국채 수익률은 한때 연 1.680%선까지 상승했습니다.
국채시장에서는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연임으로 인플레이션 대응 가능성이 반영되고 있는 모습인데요. 이와 별도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유가를 잡기 위해 비축유를 주요국과 공동으로 방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규모가 5,000만 배럴인데요. 오늘은 비축유 방출에 담긴 의미와 파월 의장을 비롯한 연준의 향후 정책방향에 대한 전망을 추가로 짚어보겠습니다.
“비축유 방출 소비자 위한 것”…“반쪽 공급에 시간 걸리고 효과 불분명”
우선 비축유 방출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에너지부가 5,000만 배럴의 석유를 방출할 것이며 이는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라고 강조했는데요. 여기에 동맹국들의 방출분이 더하면 효과는 더 커질 겁니다.
하지만 그 한계가 명확해서 바이든 대통령도 이를 인정했는데요. 그는 “정부 조치가 하루 아침에 고유가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겠지만 머지 않아 기름값이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장기적으로 청정 에너지로 전환하면서 석유 의존도를 줄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씩 보죠. 2019년 미국의 석유사용량은 하루 평균 2,050만 배럴이라고 합니다. 지난해는 코로나로 1,810만 배럴로 줄었지만 비축유 방출 규모와 비교해보면 전체적인 유가를 잡기에는 부족함을 금세 알 수 있는데요. CNN은 “비축유 방출은 전 세계 석유공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지만 실제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이번 비축유가 시장에 나오려면 다음 달 중하순은 돼야 한다고 하는데요. 에너지 기업의 가격책정 문제를 조사하고 비축유 추가 방출도 고려한다고 하지만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닙니다.
당장 미국은 이번 주 추수감사절 연휴입니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이동하는 이들이 많은데 휘발유값이 지난해와 비교하면 2배가량 올랐는데요. 바이든 대통령 당선 이후 1년 간 미국의 휘발유 가격은 61% 급등해 전국 평균 가격이 갤런당 3.40달러까지 상승했습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 탓도 있지만 갤런당 2달러 밑이었는데 지금은 4달러 가까이 하거나 4달러가 넘는 곳도 있습니다. 지난해가 과도하게 싸긴 했습니다만 너무 오른 것이죠. 이는 인플레이션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비축유 방출을 보면 바이든 행정부가 인플레이션을 대하는 태도를 일부 읽을 수 있습니다. 바로 공급을 늘려 대응한다는 건데요. 데이비드 터크 에너지부 부장관은 미 경제 방송 CNBC에 “전략유 방출은 소비자를 보호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결정됐다”고 명확히 밝혔습니다. 인플레이션 대응용이라는 말이죠.
유가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도 공급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LA와 롱비치항의 24시간 7일 근무나 물류 개선을 위한 정부 지원이 비슷한 맥락인데요. 최대고용을 중시하는 상황에서 공급난으로 생긴 인플레는 통화정책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있다고 추정할 수 있겠습니다.
문제는 바이든 정부가 생각하는 공급이라는 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공급을 내세우지만 정작 제대로 된 공급이 안 된다는 얘기죠. 당장 이날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2.3%오른 배럴당 78.50달러에 마감했고, 브렌트유는 한때 3.4% 상승한 82.43달러에 거래됐습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플러스가 추가 증산을 하지 않으면 유가는 큰 폭으로 내려갈 수 없는데, 이들이 강하게 버티고 있는데요. 골드만삭스는 “OPEC 입장에서는 원유를 더 생산에서 얻을 인센티브가 없다”고 했습니다.
“청정에너지 전환에 시간 걸려”…백악관의 최대고용 관심도 관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이 셰일산업을 포함해 미국 내 원유생산을 대폭 늘린 것을 자랑스럽게 얘기합니다. 그동안 미국은 원유수입이 많아서 중동 국가의 분쟁에 개입할 수밖에 없었고 여기에 큰 돈과 군대를 투입해야만 했는데 자신의 임기 때 미국이 원유순수출국이 돼 에너지 자립을 이뤘고, 중동의 늪에 빠져들 이유가 사라졌다는 논리를 폅니다. 그러면서 최근의 유가 상승을 두고 “OPEC는 다루기 쉽지 않다. 내가 상대했던 이들 중에 가장 까다롭다”고 하는데요.
OPEC는 바이든 대통령의 생각대로 손쉽게 움직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도 바이든 정부는 공급확대, 그것도 반쪽짜리 공급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풀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요. 뒤집어 말하면 공급확대가 계속 안 되고 늦어지면 고인플레이션이 고착화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실제 유가를 낮추려면 미국 내 생산을 늘리는 것이 방법인데 바이든 대통령은 COP26과 청정에너지 전환에 대한 구상에 이 카드를 아예 접었다고 합니다. 청정에너지로의 최종적 전환이 맞긴 합니다만 당장의 인플레이션을 낮추기는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여기에서 하나 추가로 참고할 게 있습니다. 전날 오후에 블룸버그통신에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멤버인 헤더 부쉬가 나와 “파월의 두 번째 임기 동안 연준은 미국이 최대고용으로 돌아가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한 부분인데요.
어제 ‘3분 월스트리트’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파월 의장, 브레이너드 이사의 기자회견을 전해드리면서 바이든 대통령이 인플레이션 대응을 강조하면서도 전반적으로 최대고용에 대한 언급을 많이 했다는 얘기 전해드린 바 있습니다. “물가 상승분을 고려해도 노동자의 가처분소득이 2% 증가했다”는 대통령의 말은 여전히 좀더 고용에 신경 쓸 수 있는 룸이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헤더 부쉬의 말을 보면 최소한 백악관에 물가안정보다 최대고용을 중시하는 이들이 적지 않으며 조기 금리인상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허들이 있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이는 백악관 차원에서 파월 의장과 연준에 최대고용을 더 강조할 수도 있다는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다만, 이는 정치적 도박입니다. 최대고용을 더 강조하는 배경에는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는 판단이 뼈대인데 그렇지 않다면 엄청난 후폭풍에 시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사설에서 “오랜 교훈 가운데 하나는 워싱턴과 월가가 완화적 통화정책을 최대한 오래 유지하도록 압력을 가할 것이라는 점”이라고 했는데요. 이 부분은 앞으로 인플레 대응에 관한 시각을 읽을 때 꼭 알아둬야 할 부분입니다. 특히 월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을 때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이해관계가 걸려있다는 얘기이지요.
단, 파월이 어떻게 나올지는 다른 문제
다만, 이같은 상황 속에서도 파월 의장이 결과적으로 어떤 스탠스를 취할 것이냐는 약간 다른 문제입니다. 연준 의장은 임명권자의 뜻이 중요하고, 행정부의 정책방향을 공감하는 이를 뽑기 마련입니다만 상원 인준이 통과된 이후에는 보다 자율적인 업무처리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통화정책이 공급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지만 긴축을 통해 수요를 줄이는 효과는 낼 수 있다는 겁니다. 과잉대응 시 경기침체를 불러올 가능성이 있지만 가만히 있거나 완화적 통화정책을 계속 쓰는 것보다는 나을 수 있는 것이죠. CNBC는 연준 고위관계자 2명의 말을 인용해 “연준 내에서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속도 증가에 대해 논의하는 게 적절할 것 같다고 한다"고 했습니다. 앞서 리처드 클래리다 부의장이 했던 얘기인데, 이에 동의하는 이들이 꽤 있다는 뜻이죠.
CNBC는 또 “정치권에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크기 때문에 연준이 대응에 나서기 위한 그린라이트가 켜졌다고 볼 수 있다”고도 했는데요. 팻 툼니 공화당 상원의원은 이날도 “연준이 인플레이션 대응 기회를 놓쳤다”고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공화당 의견이라고 절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최종적으로는 모든 게 시간 싸움이 될 듯합니다. 파월 의장과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지금 추세대로라면 내년 하반기에 완전고용이 될 수 있다고 한 바 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고용을 조금 더 확보할 때까지 어떻게든 공급을 늘려서 시간을 벌려고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딱딱 맞출 수 있다면 최대고용을 하면서 그때쯤해서 금리를 올려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것이죠.
물론 그들이 원하는 대로 되느냐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지금 바이든 정부가 추구하는 공급확대도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인데요.
연준도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임명권자의 의중이 중요하긴 하지만 파월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제로금리 요구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명분과 이를 뒷받침할 자료 싸움입니다. 계속되는 고인플레와 빠른 고용회복 앞에서는 백악관 내 통화완화론자들도 어쩔 수 없습니다. 11월 고용보고서와 12월 FOMC, 그때 업데이트될 경제전망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이유인데요.
지금까지의 상황을 요약하면 연준 내에서도 테이퍼링 조기 종료 얘기가 나오고 시장에서는 내년 3월 금리인상 전망이 나옵니다. 지금으로서는 연준이 속도를 낼 가능성이 커지고 있지만 파월 의장 재지명으로 약간의 변수가 생겼습니다. 큰 틀의 정책 연속성은 유지되지만 세부 정책이 달라질 수 있지요. 시기와 수준 말입니다. 갈수록 고차방정식이 돼가고 있는데요. 연준의 속내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12월 FOMC를 봐야 명확해질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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