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유가를 잡기 위해 미국과 한국 등 주요국이 꺼내든 ‘비축유 방출 카드’가 미봉책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미국이 약속한 방출량 5,000만 배럴은 전 세계에서 단 12시간 안에 모두 소비될 정도로 적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국의 비축유 방출에 반발한 주요 산유국이 기존 증산 계획마저 철회할 수 있어 오히려 유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23일(현지 시간) 미 CNN방송은 비축유 방출이 유가 상승세를 잡을 게임체인저가 아닌 미봉책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이날 백악관은 전략 비축유 5,000만 배럴을 방출하고, 한국과 중국·일본·인도·영국 등이 동참한다고 밝혔는데 이것이 시장에 미칠 효과는 극히 미미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추가 공급 소식에도 12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장대비 2.3% 오른 배럴당 78.50달러에 거래됐다.
일단 시장에 추가로 공급되는 양 자체가 적다. CNN방송에 따르면 미국이 약속한 5,000만 배럴은 전 세계에서 12시간이면 거의 소비되는 양이다. 미국으로 범위를 좁혀도 이틀 정도면 소비되는 양이기도 하다. 지난 2019년 미국의 석유 사용량은 하루 평균 2,050만 배럴이다. 이런 상황에 민주당의 로 칸나 하원의원은 비축유 방출을 촉구하면서도 이는 “만병통치약이 아닐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미국이 약속한 5,000만 배럴 중 3,200만 배럴은 스와프 방식으로 방출된다. 정유사가 일단 원유를 받았다가 언젠가 이를 다시 정부에 되돌려줘야 한다는 의미다. 미즈호시큐리티즈의 로버트 예거 애널리스트는 “시장은 결국 (원유가) 반환돼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에너지연구기관 라이스타드에너지의 루이스 딕손 애널리스트 역시 “비축고를 비우는 것은 이미 낮은 수준인 비축량에 더 많은 부담을 주고, 결국 누군가는 비축량을 채우기 위해 언젠가 매수를 계속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진정한 게임체인저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 플러스(OPEC+)’의 추가 증산 움직임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이들 국가는 이미 미국의 증산 요구를 거부했으며, 설상가상으로 미국의 비축유 방출에 반발해 기존 증산 계획도 조정할 수 있다는 경고마저 나왔다. 전날 블룸버그통신은 익명의 OPEC+ 관계자를 인용해 기존 생산 계획이 다음 달 2일에 열릴 회의에서 재평가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헤리마 크로프트 이코노미스트 역시 “이러한 움직임은 잠재적으로 미국과 주요 석유국 간 새로운 긴장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즉 유가를 자극할 수 있는 새로운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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