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비롯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정상화 기조가 강화되고 있다. 연준은 11월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발표 및 즉시 시행을 공표했고, 연말까지의 매입 일정만 확정하면서 내년 이후에는 그 속도를 가속화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시장에서는 내년 하반기 두 차례 금리 인상 가능성을 높게 반영하고, 제롬 파월 의장의 부정에도 테이퍼링 종료 이전 금리 인상이 병행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이 시점에서 주요 선진 경제권역 중에서 과거 우리와 동행성이 높았고, 통화정책 방향성을 선도하는 영연방 국가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기축통화 여부, 경제 구조와 규모 등에서 차이가 있어 속도는 다소 다르지만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축소하거나 정상화를 진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먼저 영국은 시장 예상과 달리 11월 통화정책회의에서 정책 금리를 동결하고 자산 매입 규모를 유지했다. 영란은행은 물가 목표(2%)를 감안한 약간의 긴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지만 노동시장 여건의 변화와 인플레이션 지속 여부 등에 따라 단기적인 불확실성을 거론했다. 결국 시장의 과도한 긴축 기대를 완화할 필요가 있으며 성급한 전환이 정책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뉴질랜드는 상대적으로 속도감 있는 금리 인상 사이클이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이달 이례적인 대폭 인상 가능성까지 제기되며 중기적으로는 기준금리가 최소 1.50~1.75%까지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캐나다는 G7 국가 중 가장 먼저 양적 완화를 중단하고, 내년 중반 금리 인상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호주는 최근 회의에서 국채 3년물 수익률곡선통제(YCC) 정책을 폐기하면서 2024년까지 금리를 동결하겠다는 방침을 철회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감지된다. 가계 부채 증가와 부동산 시장 과열에 더해 차입 투자 확대, 암호화폐 등 금융 불균형 우려가 커져서다. 여기에 인플레이션 지속성 우려가 많아지고 실질금리와 시중 유동성 등 금융 상황이 여전히 완화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내년 대선과 총재 임기 만료 등 이벤트 일정에 따른 부담이 겹치면서 내년 1분기 연속적인 인상으로 기준금리 1.25% 조기 도달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 보인다. 현재 한국은행 지도부와 정부 및 여당 또한 금리 인상을 지지하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내년부터는 인상 속도를 조절하자는 주장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금융연구원·현대경제연구원 등은 금리 인상 신중론을 주장하거나 점진적인 인상을 권고하고 있다. 여기에 경기선행지수가 지난 6월을 고점으로 3개월 연속 조정되는 등 경기 회복의 강도가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금리 인상은 경제 성장세에 일정 수준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하고, 공급 측면이 주도하고 있는 인플레이션 상황과 가계 부채 및 부동산 시장 안정에 적절한 수단인지에 대한 논란도 있다. 또한 10월 의사록에 따르면 금통위 내부에서도 중립 성향의 의견이 등장했다. 조윤제 위원으로 추정되는 이 금통위원은 11월 인상을 반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내년 초 추가 인상에서는 동결 의견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동결 소수 의견이 2명으로 증가하면서 점차 추가 인상 허들이 높아지는 경로가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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