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래를 개척해 새로운 삼성을 만들자”고 역설했다. 그는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를 방문해 “뒤따라오는 기업과의 격차 벌리기만으로는 거대한 전환기를 헤쳐나갈 수 없다”며 이같이 주문했다. 그는 24일 방미를 마치고 서울에 도착해 기자들과 만나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보고 오니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이 부회장의 메시지는 “마누라·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고 이건희 회장의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연상케 하는 것으로 혁신과 변화의 의지를 담고 있다. 삼성이 ‘시스템 반도체 비전 2030’의 전초기지 역할을 할 생산 부지로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를 낙점한 것은 변신의 출발점이다. 삼성은 미국 진출 25년 만에 최대 규모인 20조 원을 새 기지에 투자한다.
삼성은 다방면에서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우선 기술 초격차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는 미국·중국 등이 무섭게 기술 격차를 좁혀오는 반면 비메모리는 대만 TSMC 등과의 간극이 여전하다. 압도적 기술을 확보하지 못하면 흔들리는 ‘반도체 거함’ 인텔이나 몰락한 휴대폰 왕좌 노키아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두 번째는 삼성그룹의 정체성을 휴대폰 등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과감한 인수합병(M&A)이다. 코로나19 국면에서 경쟁 기업이 줄줄이 M&A에 나선 반면 삼성은 2016년 미국 하만 인수 이후 사실상 맥이 끊겼다.
‘가지 않은 길’을 찾기 위해 부단히 변신하는 노력은 다른 기업들에도 절박한 일이다. 글로벌 산업 패권 전쟁에서 생존하려면 기술 초격차를 확보하고 ‘블루오션’과 같은 첨단 신산업에 과감히 뛰어들어야 한다. 정부도 기업들이 외로운 싸움을 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기업의 뒷다리를 잡으려 할 게 아니라 노동·규제 개혁과 세제·예산 등 총체적 지원으로 기업의 ‘혁신 마차’를 밀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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