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만들지 않으면 솔직히 재미가 없어요. EP나 싱글은 서사를 만들기 너무 짧아요. EP를 만들 땐 어떤 곡을 만들어야 할지 감을 못 잡겠더라고요. EP는 전곡을 대중이 좋아할만한 곡으로 채워야 하는데, 그런 곡을 딱 만들 재주가 없어서 정규앨범을 만들어요” (김윤아)
K팝 아이돌이든 인디 씬 밴드든 싱글 혹은 미니앨범(EP)는 내는 시대에도 24년차 밴드 자우림은 지난달 26일 정규 11집 ‘영원한 사랑’을 냈다. 최근 서울경제와 화상으로 만난 자리에서 멤버들은 정규앨범의 매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기타 이선규는 “이런 음악을 듣는 재미도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점”을, 베이스 김진만은 “앨범 전체를 반복하며 세계관을 느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새 앨범의 색채는 전반적으로 어둡다. 자우림 다운 앨범이라 생각한다는 김윤아는 “우리도 생활인인 만큼 세계나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지금은 딱히 밝은 음악을 쓰고 싶은 때는 아닌 것 같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만든 앨범의 첫 곡 ‘페이드 어웨이’(FADE AWAY)에는 당시 사람들을 만날 수 없었던 심정을 ‘세상에 흩어진 우린 별과 별처럼 멀리 있어’라는 가사에 녹였다.
앨범 제목은 ‘영원한 사랑’이지만 앨범의 화자는 영원한 사랑을 믿지 못하고 질투에 사로잡힌 존재다. 김진만은 “사랑은 영원하지 않기에 소중하다”는 말로 새 앨범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그 연장선상에 있는 타이틀곡 ‘스테이 위드 미’(Stay With Me)는 사랑하는 사람과 항상 함께 있을 수 없어서 두려운 이가 나와 항상 함께 있자는 불안을 그린 가사 속에 그간 선보였던 타이틀곡과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직선적인 기타 리프와 멜로디를 앞세운 밴드 사운드가 밤거리를 드라이브하듯 미끄러지는 전개는 항상 도시적 분위기를 풍기던 그들의 곡에서도 한동안 못 들어본 모습이다. 김윤아는 뜻밖에도 “이 곡을 앨범에서 뺄까도 생각했다”고 말했다. 밴드 멤버들은 앨범을 만들며 타이틀곡을 고르지 못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모니터링을 했더니 20대 여성층을 중심으로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김윤아는 “저희의 핵심 팬층이 20대 여성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들의 콘서트를 가면 관람객 연령층이 생각보다 젊다는 반응이 적잖다. 이번 앨범 발매와 함께 열었던 단독 콘서트에서도 예매자 가운데 연령대는 20대가 절반을 넘겼고, 성별로는 여성이 70%를 웃돌았다. 이선규는 “트렌드에 연연하지 않다 보니 역설적으로 젊은 층에서 좋아해주시는 것 같다”며 “특정 시대·세대를 이야기하지 않고 꾸준하게 청년을 노래했다”고 돌아봤다.
자우림은 이번 앨범에서 선공개곡인 ‘잎새에 적은 노래’를 비롯해 ‘디어올드마이프렌드’, ‘다 카포’(DA CAPO) 등에서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 그리움을 가사로 표현한다. ‘뻬옹 뻬옹’(PEON PEON’)은 김윤아가 키우는 고양이의 시점에서 콩팥이 없어 오래 못 살지만 살아 있는 동안 함께 춤을 추자 말하고, ‘FEEL PLAY LOVE’는 따듯한 멜로디와 사운드에 더 좋은 어른이 되고 잘 웃는 사람이 되자고 얘기한다. 하지만 그 발걸음은 몹시 불안하게 느껴진다. 특히 앨범의 문을 닫는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는 ‘세상의 끝까지 이제는 혼자가 아니야’라는 말을 매우 불안정한 전자음 위에 싣는다. 그리고 다시 ‘사랑한다고 말해줘, 영원히 사랑할거라고. 어떤 외로움은 혼자 삭이니 힘드니까’라며 불안하게 읊조리는 첫 곡으로 돌아온다. 자우림은 불안하지만 결국 누군가와 함께 가야 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이런 말 하면 또 중2병 같다고 얘기할 것 같은데. (웃음) 인간은 부서지는 존재고 우리는 모두 약하니까 지켜줄 뭔가가 필요하죠. 조직이든, 차든 뭔가 남에게 보여줄 갑옷 같은 것이 필요한 존재죠. 그런 불안함을 안은 채 같이 가자고 얘기하고 싶었어요”(김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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