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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이] 히틀러와 크리스마스가 나오는 멜랑꼴리한 영화 '끝없음에 관하여'

[리뷰] 소지섭이 배급하는 스웨덴 거장 영화

제76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은사자상 빛나는 수작

로이 안데르손 감독의 '끝없음에 관하여'



뭐 보지? 오늘 영화는 이거! '오영이'


영화 ‘끝없음에 관하여’ / 사진=찬란, 소지섭, 51k 제공




한 남자가 길에 서 있다. 아는 친구가 곁을 지나가기에 인사를 건네보지만, 친구는 아는 체하지 않는다. 화면이 바뀌고. 레스토랑 종업원이 손님 옆에 서 있다. 와인을 따르는데 잔이 넘치고 만다. 그때 누군지 모를 한 여자의 내레이션. “온통 다른 생각에 빠져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이번엔 커다란 나무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목길을 오르는 남자가 있다. 주변에는 채찍과 몽둥이를 휘두르는 남녀가 있다. 예수가 삶의 마지막 날, 골고타 언덕을 오르는 모습이다. 화면 바로 앞에 다다를 때쯤 남자는 힘겹게 내뱉는다. “내가 대체 무슨 죄를 지었나요.”

사랑을 찾지 못한 젊은이, 길을 잃은 아저씨, 전쟁에 아들을 잃은 부부 그리고 만원 버스 안에서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라고 흐느끼는 남자까지. 오는 16일 국내 개봉을 앞둔 스웨덴 영화 ‘끝없음에 관하여’(감독 로이 안데르손)는 슬픔과 우울에 빠진 도시인의 모습을 마치 회화처럼 관찰하는 작품이다.

안데르손 감독이 영화에 일부러 집어넣었다는 여성 내레이터는 마치 미술관의 도슨트처럼 한 명, 한 명 이어지는 등장 인물들의 사연을 관객에게 소개해준다. 잿빛 도시를 살아가는 이들은 하나같이 표정이 없다. 마냥 우울하진 않고 그저 평범한 모습들이다. 영화를 보고 나와 노트북을 두드리며 글을 쓰고 있는 내 표정도 똑같다.





십자가를 짊어졌던 스웨덴의 예수는 사실 천주교 신부였다. 신자들 앞에서 미사를 드리는 도중에도 와인을 벌컥벌컥 들이마신다. 그는 신앙이 사라졌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이 박히는 악몽을 반복해서 꾼다. 도움이 필요했던 신부는 정신과 의사를 찾아간다. 의사는 모든 걸 이해한다는 듯 그의 슬픔에 공감해 준다. 하지만 영화 후반, 신부 자신을 치유해 줄 것으로 생각했던 그 믿음마저도 사라지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한 번은, 10대 여성 셋이 있다. 식당에서 흥겨운 음악이 흐르자 그들은 춤을 추기 시작한다. 가끔씩 콧노래도 부르며, 시선 따윈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로운 모습이다. 사실 꽤 이질적인 장면으로 느껴진다. 잿빛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운 장면. 줄곧 무표정으로 지켜보던 식당 손님들은 노래가 끝나자 환호한다. 또 남녀 커플이 있다. ‘고립계에서 에너지의 총합은 일정하다’는 열역학 1법칙을 이야기하며 “수 만년이 지나도 우리 에너지는 그대로일 것”이란 희망을 이야기한다. 세찬 빗속을 걷는 아버지와 어린 딸도 있다. 딸의 신발 끈이 풀리자 아버지는 우산을 아무렇게나 내려놓고는, 비를 맞으며 딸을 도와준다.

내내 우울했지만 그래도 감독은 애써 인간다움을 말한다. 남편에게 뺨 맞는 부인을 도와주는 사람들. 그리고 막 도착한 기차역에 홀로 내렸지만, 그래서 외로웠지만 저 멀리서 달려와 따뜻하게 끌어안는 연인같은 모습 말이다. 앞서 언급했던 길 위의 남자는 집에 와서도 투덜거렸다. 친구가 날 또 모른 체했다고. 어릴 때 자신보다 공부도 못하던 놈이 박사 학위를 땄다면서 “난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라고 한탄한다. 그러자 지켜보던 부인이 하는 말, “그래도 우린 나이아가라 폭포도, 에펠탑도 보고 왔잖아.”

그리고 만원 버스 안의 남자.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라고 꺼이꺼이 우는데 주변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불쌍한 사람! 집에서나 울 것이지 왜 여기서 저러나”라는 다른 이의 투덜거림에 다른 이가 외친다.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러냐고. 슬프고 우울한 감정. 소위 ‘멜랑꼴리’라고 부르는 기분이 영화 전반에 흐른다. 하지만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감정을 묘하게 건드리기 시작하더니 한 번은 끝내 폭발한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소도시 쾰른 위를 떠다니는 연인, 시베리아 포로수용소로 향하는 수많은 군인들, 패배를 앞둔 히틀러와 나치 장교들 표정 따위의 역사적 풍경들도 펼쳐진다. 전쟁이야말로 누구도 승자가 아닌, 슬픔 그 자체가 아닐까. 흰 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 날 카페에서 한 남성은 “환상적이다”라고 외친다. 왜인지 종일 기분이 안 좋다던 치과 의사는 “그러시든가”라며 신경 쓰지 않는다. 고개만 들면 잔잔히 내리는 하얀 눈이 보일 텐데 그는 신경 쓰지 않는다.

영화 투자자로도 활동하고 있는 배우 소지섭이 수입, 배급하는 영화 ‘끝없음에 관하여’는 지난 2019년 제76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감독상(은사자상)을 받은 작품이다. 로이 안데르손 감독은 첫 장편인 <스웨덴 러브 스토리>로 데뷔 때부터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4관왕을 차지하는 등 스웨덴 거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지만, 국내 관객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감독일 수도 있다.

사실, 강조하지 못했는데 이 영화는 슬픔을 비집고 나오는 아이러니한 웃음이 일품이다. 국내에 처음 정식 소개되는 안데르손의 아름다운 미장센을 관객들이 어떻게 바라볼지 기대된다. 12월 16일 개봉.

+요약


제목 : 끝없음에 관하여(About Endlessness)

장르 : 포에틱 시네마

감독 : 로이 안데르손

출연 : 벵트 베르기우스, 안야 브롬스, 마리 버만

수입/배급 : 찬란

공동 제공 : 소지섭, 51k

러닝타임 : 76분

관람등급 : 12세이상 관람가

개봉일 : 2021년 1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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