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진자 사상 최다인 5,000명을 넘어서며 방역에 혼란이 일고 있다. 일본, 대만, 홍콩 등 동북아시아 대부분 국가에서 코로나19 상황이 안정세를 보이는 가운데 유독 한국에서만 확진자가 폭증하는 특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기존 바이러스보다 전염력이 더 강한 새 변이 ‘오미크론’까지 국내에 상륙했다. 11월 들어 진행된 ‘단계적 일상회복’ 전반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정부는 이에 기존의 방역 완화 계획을 비틀어 다시 그 수위를 높이기로 했다. 일상회복이 연기되면서 이 조치가 정치권에 미칠 영향에도 관심이 쏠린다. 특히 대선이 석달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국가적 위기감이 고조되는 흐름은 현 정부와 여당에 대체로 불리하지 않게 작용할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임기 말까지 정부의 강한 국정 주도, 사회적 단합에 대한 국민적 수요 증가 등은 선거에 악재보다는 호재로 작용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여당이 180여 석을 휩쓸며 대승을 거둔 지난해 4월 총선 결과로도 어느 정도 증명됐다는 평가다. 다만 자영업자 반발, 백신 수급 차질, 코로나19 확산세 임계치 돌파, K-방역 과대 홍보 역효과 등 정권의 발목을 잡을 변수들도 무시할 수 없다. 야당의 압승으로 끝난 지난 4·7 재보궐 선거에는 부동산과 함께 백신 도입 지연 문제도 여권에 치명타로 작용했다.
文대통령 “일상회복 2단계 유보...4주간 특별방역대책”
단계적 일상회복 이후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3,000~4,000명을 넘나들자 상황을 지켜보던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9일 결국 ‘일상회복 단계 상승 유보’라는 결단을 내렸다. 지난 21일 ‘국민과의 대화’에서는 단계적 일상회복을 거론하며 “정부는 5,000~1만명까지 확진자 수가 늘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대비했다”고 장담했지만 실제로는 확산세가 거세지자 위기감을 강하게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29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코로나19 대응 특별방역점검회의’에서 “전 세계 확진자수가 6주 연속 증가했고 우리나라의 상황도 엄중하다”며 “일상회복 2단계 전환을 유보하면서 앞으로 4주간 특별방역대책을 시행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5~11세 아동에 대한 접종 검토와 먹는 치료제의 연내 도입도 검토하라고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미접종자의 접종 못지않게 중요한 급선무는 3차 접종을 조기에 완료하는 것”이라며 “이제 3차 접종이 추가 접종이 아니라 기본 접종이며 3차 접종까지 마쳐야만 접종이 완료되는 것으로 인식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12~17세 접종이 상대적으로 부진하다”며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백신의 효과와 안전성을 충분히 설명하고 학교로 찾아가는 접종 등 편의를 높이는 방안을 적극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위중증 환자 증가와 병상 부족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의료계와 협력하고 지역사회 의료기관과 연계해 위중증 환자 치료와 재택 치료에 어떤 공백도 없도록 총력을 기울여 달라”며 “내년 2월 도입하기로 한 먹는 치료제도 연내에 사용할 수 있도록 도입 시기를 앞당기고 국산 항체 치료제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당부했다.
방역당국은 문 대통령 지시에 따라 이날 회의 직후 후속 방역 대책을 발표했다. 완치된 환자가 병상 치료를 고집하는 것과 같은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모든 코로나19 확진자가 기본적으로 재택치료를 받게 했다. 백신 추가 접종 대상도 18세 이상 모든 연령층으로 확대했다. 추가 접종 간격은 6개월에서 5개월로 단축했다. 학교의 경우 등교수업을 원칙으로 하되 밀집도는 지역별로 조정하기로 했다.
문 대통령은 나아가 신종 변이바이러스인 오미크론의 국내 유입을 막는 조치도 시행하라고 거듭 요구했다. 문 대통령은 30일 오미크론 변이 의심사례가 발견돼 분석 중이라는 보고를 받고 참모들에게 “‘오미크론 태스크포스’를 중심으로 엄중히 대응하라”고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아직 새로운 변이에 대한 충분한 분석이 이뤄지지 않았으나 향후 코로나 대응에 중대 국면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오미크론 변이 판별을 위한 진단 키트를 조속히 완료하고 방역전략을 신속히 수립하고 시행하라”고 지시했다.
오미크론 결국 상륙…확진자는 5,000명 돌파
문 대통령의 우려에도 오미크론 국내 상륙은 현실화됐다. 지난달 14~23일 나이지리아를 방문한 40대 부부가 오미크론에 감염된 것으로 판정받은 것이다. 이들은 10월28일 모더나 백신 접종을 완료하고도 돌파 감염을 당했다.
오미크론과 별개로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같은 날 기어이 5,000명을 넘어섰다. 한국의 환진자 증가 추세는 해외에서도 관심을 끌었다.
1일(현지시각) 미국 CNN방송은 한국 질병관리청의 발표를 인용해 한국의 일일 확진자 수가 5,123명으로 최다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수도권에서만 4,110명이 확진됐고 일일 사망자는 34명, 위중증 환자는 723명이라고 보도했다.
AP통신도 한국의 일일 확진자 수가 처음으로 5,000명을 넘었다는 사실과 오미크론 의심 사례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로이터 통신은 한국의 위중증 환자 수도 11월 초 400명 미만이었던 데 비해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고, 일본 공영방송 NHK는 한국 백신 접종률이 80%를 넘었으나 조기에 백신 접종을 마친 고령자와 미접종인 아이들 사이에서 감염자가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호주 캔버라타임스 역시 한국의 일일 최대 확진자 수 경신 소식을 알렸다.
일본은 지난달 30일부터 전 세계를 대상으로 외국인 신규 입국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기로 했다. 같은 달 8일 비즈니스를 목적으로 한 입국이나 유학생 등의 입국을 제한적으로 허용했다가 새 변이 출현에 따라 다시 문턱을 높인 것이다.
확진자 수가 폭증 국면에 접어들고 신종 변이까지 출몰하자 청와대도 잰걸음을 보였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1일 뉴스토마토 유튜브 채널인 ‘노영희의 뉴스인사이다’에 출연해 “오미크론 확진자가 늘어나면 대대적인 방역조치 조정이 있을 수 있다”며 “문 대통령이 주재한 특별방역점검 회의에서 이런 내용이 거론됐으며 이미 검토가 끝난 상태”라고 말했다. 박 수석은 “현재 오미크론 변이에 대한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며 “현재로서는 위험성에 대해 예단하기 어렵고 신속하게 선제적으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방역 강화 선회…"수도권 사적모임 6명까지"
위기감이 예상을 뛰어넘자 정부는 결국 단계적 일상회복 진행을 잠정 중단하고 방역을 강화하는 카드를 꺼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3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는 감염의 확산세를 빠르게 진정시키기 위해서 ‘사적모임 인원 제한’을 강화한다”며 “다음주부터 4주간 사적모임 허용 인원을 수도권은 최대 6명, 비수도권은 8명까지로 축소한다”고 밝혔다. 현재 수도권 10명, 비수도권 12명에서 4명씩 줄인 것이다.
김 총리는 또 “일상에서 감염위험을 낮추기 위해 방역패스를 전면적으로 확대 적용하고자 한다”며 “식당과 카페를 포함한 대부분의 다중이용시설에 적용한다. 실효성 있는 현장 안착을 위해 1주일의 계도기간을 둘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식당·카페는 자영업자·소상공인 반발을 감안해 방역패스 대상에서 일단 빠졌다.
이와 함께 16%에 불과한 청소년 백신 접종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PC방 노래방 등에 ‘청소년 방역패스’도 도입하기로 했다. 계도 기간을 둬 내년 2월부터 적용한다. 김 총리는 “18세 이하 청소년의 확진자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며 “고령층 3차 접종과 청소년 기본접종이 방역의 키를 쥐고 있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마스크 쓰기 등 기본 방역수칙은 항상 실천해주시고, 연말에 계획하신 만남이나 모임도 가급적 뒤로 미뤄주실 것을 부탁 드린다”며 “특히 3차 접종을 마치지 못하신 어르신께서는 본인의 안전을 위해서 최대한 외부활동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만 63세인 김 총리는 이날 서울 종로구보건소에서 3차 접종을 솔선수범해 마쳤다. 지난 7월 2차 접종을 한 지 4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김 총리는 접종을 마친 뒤 “현재로선 코로나19에 대항할 가장 효과적인 무기는 결국 백신”이라며 “지난 2년간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전 세계가 숱한 어려움을 겪어왔지만 국민적 단합과 협력만큼 강력한 힘은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병상이 부족한 와중에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서울대병원에 아들을 특혜로 입원시켰다는 의혹을 받았다. 홍 부총리 측은 이에 서울대병원 특실을 이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특혜는 아니었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임기말 국정 운영 동력 강화될 수도…선거에 방역 변수 증가
코로나19 확진자 급증 추세는 당분간 문재인 정부의 국정 동력에 힘을 실을 것으로 예상된다. 방역은 국가적 과제인 만큼 일종의 ‘훈수’ 외에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직접 관여할 여지도 적다. 부동산, 대선 후보들의 도덕성, 정치권 이합집산 등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떨어질 수 있다. 각 후보가 현장 일정을 소화하며 존재감을 알리는 데도 걸림돌이다.
연말연시를 맞아 자영업자들의 불만, 백신 수급, 접종 속도, 위중증 환자와 사망자 증감, 오미크론 등 신종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대처, K-방역 선전·홍보, 거리두기 부활 여부 등이 한꺼번에 변수로 떠오를 가능성도 있다.
오미크론 자체가 코로나19 국면에 가져올 변화도 정치·사회적으로 큰 변수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 보도에 따르면 독일 임상 감염병학자 카를 라우터바흐 교수는 “오미크론이 처음 보고된 남아프리카공화국 전문가들의 말대로 비교적 덜 심각한 증상을 유발한다면 코로나19 종식을 앞당길 수 있는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미크론은 현재 주종인 델타 바이러스의 2배에 달하는 32개 스파이크 단백질을 갖고 있다”며 “이는 감염에 최적화된 반면 덜 치명적인 것이고 이는 대부분의 호흡기질환이 진화하는 방식과 일치하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가 오미크론을 계기로 전파력은 높지만 치명률은 떨어지는 전염병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라우터바흐 교수의 견해를 두고는 이와 유사한 의견을 낸 전문가들도 있었다. 다만 ‘성급한 낙관론’이라며 이를 경계한 전문가들은 그보다 더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
국내 방역 전략 변화가 가져올 여파를 따지기 위해서는 코로나19 상황과 정부의 대응을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K-방역 신화’가 통했던 지난해 4월 총선과 백신 늦장 도입이 문제가 됐던 올 4·7 재보선의 결과가 너무나 판이했던 까닭이다. 코로나19 극복이라는 국가적 난제에 어떤 해법을 제시하는가가 차기 대선에 더 큰 화두가 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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