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출범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존재 이유가 도마 위에 올랐다. 아직 구속·기소 성과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여운국 공수처 차장의 최근 언급은 공수처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여 차장은 2일 ‘고발 사주’ 의혹을 받는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의 구속영장 실질 심사에서 “우리 공수처는 아마추어”라며 10년 이상 수사한 손 검사가 공수처의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 2인자가 법률과 증거로 입증해야 할 자리에서 황당한 논리를 편 것이다.
공수처는 손 검사에 대해 체포영장을 1회, 구속영장을 2회 청구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공수처는 ‘손준성 보냄’이라는 꼬리표와 함께 여권 인사 등에 대한 고발장이 첨부된 텔레그램 메시지를 단서로 수사를 진행했지만 확실한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 결국 법원은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상당성에 대한 소명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결했다. 그런데도 공수처는 그날 오후 판사 사찰 문건 작성 의혹과 관련해 손 검사에게 6일 출석하라고 통보하는 등 무리수를 뒀다. 그러잖아도 공수처는 절차적 위법 논란에 자주 휩싸였다. 법원은 공수처가 김웅 국민의힘 의원실을 뒤지는 과정에서 영장을 제시하지 않는 등 위법을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정치 편향은 더 큰 문제다. 공수처가 수사에 착수한 12건 중 4건은 친여 단체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고발한 사건이다. 이성윤 서울고검장 소환 때 관용차를 제공해 ‘황제 조사’ 논란을 겪었는데도 여전히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검찰 개혁’을 외치는 문재인 정부가 입법을 강행해 만든 공수처가 한 해도 안 돼 ‘공수표’가 된 셈이다. 게다가 공직자 범죄에 대한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갖는 별도의 수사기관 설치는 국내외 사법 체계상 유례없는 일이다. 옥상옥의 공수처가 무능하고 정치 중립조차 지키지 못한다면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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