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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대선만 치르면 부처 간판부터 바꾼다…“그래서 일 잘한 정부였나”

◆정부 조직 개편의 정치학

前정권 차별화·성과 조급증에 5년마다 조직 개편 반복

성공 사례 거의 없고 집권 초 국정운영 차질 등 부작용

규제 부담 89위,정책 안정성 76위…정부 경쟁력 민낯

‘일하는 정부’ 위해 하드웨어 개편보다 인사 혁신 필요

20대 대선을 약 90일 앞둔 가운데 여야 대선 후보들이 정부 조직개편론을 제기해 공직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누가 당선되든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테이블에서 상당수 부처의 운명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 지난 10월 3선 연임에 성공한 최병욱 국토교통부 노조위원장의 공약 1호는 ‘대선 이후 일방적 정부 조직 개편 저지’였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여권 주자마다 ‘주택부’ 신설을 공약한 데 따른 국토부 해체의 불안감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는 박근혜 정부 당시 해양수산부를 떼어낸 데 이어 문재인 정부 들어 수자원 관리 기능을 환경부로 넘겼다. 여기에 더해 주택 기능마저 떨어져 나간다면 국토부는 존립 자체를 위협받게 된다. 국토부 내 주택 정책의 비중은 절반쯤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산업통상자원부는 7월 ‘조직 진단을 통한 조직 개편 방안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산업부는 “정책 환경 변화에 따라 주기적으로 연구 용역을 의뢰한다”고 설명했지만 차기 정부의 정부 조직 개편에 대비한 대응 논리 개발용이라는 관측을 낳았다. 이미 올해 초부터 여당인 민주당을 중심으로 ‘기후에너지부’를 신설하자는 주장이 제기된 데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도 경선 과정에서 이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산업부는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통상 조직(통상교섭본부)을 뗐다 붙였다 하는 과정에서 몸살을 앓았다.





20대 대선이 3개월가량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대선 후보들의 정부 조직 개편론에 공직 사회가 긴장하고 있다. 정권 말이면 어김없이 되풀이되는 관가의 풍속도다. 단연 주목되는 것은 기획재정부 해체론이다. 이재명 후보는 최근 “기재부가 예산권으로 다른 부처의 상급 기관 노릇을 하고 있어 예산 기능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며 기재부를 정조준했다. 이 후보는 앞서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반대한 기재부를 겨냥해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여성가족부를 ‘양성평등부’로 개편하겠다고 직접 언급했다. 윤 후보 대선 캠프는 4차 산업혁명 대비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교육부와 산업부·고용노동부 등 일부 부처 기능을 재조정하겠다는 구상을 밝혀 해당 부처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여기에 더해 이 후보는 2030세대를 겨냥한 ‘청년부’ 신설론을 꺼내 차기 정부의 조직 개편이 생각보다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물론 이런 개편론이 그대로 실현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내년 3월 대선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테이블에서 상당수 부처의 운명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 2월 29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관계자들이 재정경제부 현판을 기획재정부 현판으로 교체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워싱턴DC 소재 재무부 청사 외벽에 걸린 로고 동판. 미 재무부는 1789년 설립 이후 명칭을 그대로 쓰고 있다. /워싱턴DC=연합뉴스


정부 조직은 이른바 ‘1987년 체제’ 이후 새 정권이 일곱 차례 들어설 때마다 어김없이 수술대에 올랐다. 조직 개편의 폭은 정권 재창출 때보다 진영 간 정권 교체가 이뤄질 때 더 컸다. 예컨대 ‘작은 정부’를 기치로 대(大)부처제를 지향한 이명박 정부는 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부·해양수산부·기획예산처·국정홍보처 등 무려 5개 부처를 폐지했다.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직인수위 없이 출범하는 바람에 임기 초에는 소폭 개편에 그쳤으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 등 세 차례나 추가로 단행했다. 이에 따라 차기 정부의 조직 개편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66번째가 된다.

역대 정부는 출범 때마다 왜 정부 조직 수술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것일까.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두 가지를 꼽았다. 첫 번째는 과거 정부의 색깔 지우기 내지 차별화 시도이고 두 번째는 5년 단임제 정부의 성과 조급증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조직 개편 성과에 대한 철저한 검증 없이 보여주기식으로 하드웨어만 바꾸다 보니 차기 정부가 또다시 뒤집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의 행정안전부는 누더기 개편의 최대 희생양이 돼왔다. 1998년 내무부와 총무처를 합친 행정자치부는 이명박 정부 때 행정안전부, 박근혜 정부 때 안전행정부로 출발했다가 세월호 참사 이후 행자부로 되돌아갔다. ‘행자→행안→안행→행자→행안’으로 부처 명칭이 춤을 추는 동안 일반 국민들은 물론 공직 사회조차 부처 명칭을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미국의 1789년 연방 정부 출범 당시 3개 정부 조직(국무·전쟁·재무부) 가운데 국무부와 재무부의 명칭이 지금껏 그대로 유지된 것과는 천양지차다. 이정해 한국행정연구원 정부조직디자인센터 소장은 “미국은 의회 차원의 견제로 어지간해서는 연방 정부의 조직과 명칭을 바꾸지 않는다”며 “2001년 9·11테러 이후 탄생한 국토안보부가 가장 최근의 개편이었다”고 소개했다.

정부 조직이 정책 환경 변화에 뒤처져서도 안 되겠지만 정권 교체 때마다 ‘묻지 마’식으로 개편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조직과 기능을 개편하고 부처 간판을 바꾼다고 해서 새 정부의 국정 철학과 비전이 제대로 실현되는 것도 아니다. 김동욱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정부 조직을 이리저리 갖다 붙이거나 쪼개는 개편 작업은 발표부터 입법과 시행·정착까지의 혼란과 갈등 등으로 당초 기대했던 성과를 낸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진단했다. ‘창조경제’를 기치로 내건 박근혜 정부의 미래창조과학부 신설은 ‘개편을 위한 개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청와대 정부’라는 말이 있듯이 청와대가 각 부처의 상전 노릇을 하면서 주요 정책을 틀어쥐고 있는데 부처 기능과 명칭 개편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회의론도 나온다. 김동욱 교수는 “현 정부의 최대 실정인 부동산 정책은 이념을 내세운 청와대의 독주 탓이 크다”고 진단했다.

2017년 7월 정부서울청사에서 한 공무원이 신설된 행정안전부 안내판을 달기 위해 옛 안내판을 떼어내고 있다. /연합뉴스


오히려 ‘개편을 위한 개편’에 매몰되면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 정책 일관성 훼손뿐 아니라 공직 사회의 혼란과 조직 내부 갈등을 불러 행정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김형준 교수는 “5년 단임 대통령제에서 취임 이후 1년은 정권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인데도 조직 개편의 후유증으로 허송세월할 수 있다”며 “정 필요하다면 집권 1년을 보내고 조직 개편을 단행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정부조직법 개편을 둘러싼 여야 갈등으로 새 정부의 국정 공백이 발생하기 일쑤였다. 정부조직법이 국회에 제출되고 통과될 때까지 걸린 기간은 문재인 정부까지 최근 4개 정부를 보면 최장 51일, 최단 32일이었다. 문명재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성과가 확실하다는 판단이 내려지지 않는다면 기존 부처의 기능 조정에서 대안을 찾고 하드웨어 개편을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럼 역대 정부의 조직 개편으로 정부의 효율성과 경쟁력은 나아졌는가. 규제와 칸막이 행정의 고질은 거의 개선되지 않았고 되레 행정부 비대화를 초래했다. 심지어 ‘작은 정부’를 내세운 이명박 정부조차 임기 막판에 공무원 수를 늘렸다. 매년 국가 경쟁력을 진단하는 스위스 국제경영대학원(IMD)과 세계경제포럼(WEF)의 평가 결과는 시사적이다. 6월 IMD 평가에서 한국의 국가 경쟁력은 64개국 중 23위를 차지했지만 4대 분야 중 하나인 정부 효율성은 34위에 머물렀다. WEF 기준을 보면 좀 더 명확해진다. 코로나19 사태로 중단되기 직전인 2019년 평가에서 우리나라의 종합 순위는 141개국 가운데 13위에 올랐다. 하지만 정부 규제 부담 89위, 정부 정책 안정성 76위, 법 체계 효율성 45위, 정부 중장기 전략 39위 등은 부끄러운 민낯이다. 조성한 중앙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일을 잘하는 정부를 만들려면 하드웨어를 바꾸기보다 정부 운영 쇄신과 공무원 전문성 제고, 인사 혁신 등의 소프트웨어 개혁에 집중하는 게 낫다”고 강조했다.

금융 정책·감독 일원화했더니 모피아 머릿수 2배 늘었다


◆금융위의 파킨슨 법칙

공무원 조직과 인력은 업무량에 상관없이 늘어난다는 ‘파킨슨 법칙’은 금융위원회에도 얼추 들어맞는다. 금융위는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 당시 출범한 합의제 중앙행정기관으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과 금융감독위원회를 합쳐 탄생했다. 설립 취지는 정책과 감독의 일원화였다. 당시 재경부는 기획예산처와 결합해 현재의 기획재정부로 탈바꿈했다.

금융위 사무 조직은 처음에는 단출했다. ‘금융위와 그 소속기관 직제’에 따르면 2008년 출범 당시 사무처장(1급) 아래에 실무 국장급 직제(대변인·기획조정관 제외)는 금융정책국과 금융서비스국·자본시장정책관 등 3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출범 1년 만에 금융서비스국 산하 자본시장정책관을 자본시장국으로 승격시키더니 이런저런 명분을 내세워 XX정책관·OO단 같은 국장급 직제를 만들어 몸집을 불려왔다. 현 정부 들어서도 금융소비자보호국과 청년정책과·금융뉴딜과 같은 정권 맞춤형 조직이 잇따라 신설됐다. 현재 금융실무형 국장급 자리가 6개에 이르고 이와 별개로 금융그룹감독혁신단 등 3개의 국장급 한시 조직도 있다. 조직이 비대해지면서 과거 과장이 맡았던 업무를 국장 또는 정책관이 담당한다는 뒷말도 나온다.

2008년 3월 서울 서초동 옛 조달청 청사에 입주한 금융위원회의 현판식 모습. 전광우(왼쪽 두 번째) 초대 위원장과 이창용(〃세 번째) 부위원장 등이 가림막을 걷어내고 있다. /연합뉴스


조직 신설은 정원 증가로 이어진다. 행정안전부의 중앙행정기관별 정원 현황에 따르면 151명으로 출발했던 금융위 머릿수는 현재 320명쯤 된다. 12년 동안 두 배 늘어났다. 공룡 부처인 기재부의 정원이 같은 기간 30%가량 증가한 데 비하면 가히 신공(神功)의 경지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99년 출범한 금감위 시절에 사무 조직 정원은 33명에 불과했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정권의 ‘금융 정책 코드’를 귀신처럼 잘 읽어냈고 대형 금융 사고가 발생한 뒤 시차를 두고 조직과 인력을 보강하는 데 탁월했다는 분석이 많다. 세종시 관가 관계자들이 다들 금융위를 부러워하는 이유가 비단 소재지가 서울이어서만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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