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내년에 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강력한 경제협정을 추진한다. 미국 주도의 이 협정은 관세 철폐를 목적으로 한 전통적인 무역협정과 달리 공급망 협력, 대(對)중국 수출 통제, 인공지능(AI) 표준 확립 등을 목표로 한다. 이는 미국이 올해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안보협의체)를 발족시키며 중국을 겨냥한 안보 동맹을 강화한 데 이어 통상 분야에서도 중국을 겹겹이 포위하겠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9일(현지 시간)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은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아시아 국가 간에 ‘매우 강력한’ 경제협정을 추진하겠다”면서 “이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정책 우선순위에 있다”고 말했다. 러몬도 장관은 현재로서는 미국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복귀할 의사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대신에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국가들과 함께 공급망을 구축하고 중국을 견제하는 별도의 경제협정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전통적 무역협정과 같이 의회의 승인이 필요한 형태를 피해 새 협정 구축과 발효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지난달 일본·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을 방문한 러몬도 장관은 이 역시 내년 초부터 시작될 경제협정 논의를 위한 사전 행보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새로운 경제협정은 일본·싱가포르·호주·뉴질랜드 같은 선진국들뿐 아니라 말레이시아·베트남·태국 같은 개발도상국도 포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서 “내년 1분기에 공식적으로 협정 관련 절차를 시작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러몬도 장관은 새로운 협정이 반도체를 포함한 핵심 제품의 공급망 확보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수출 통제를 통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저지하겠다는 목표도 분명히 제시했다. 특히 “미국의 대만 의존도가 이렇게 높은 것은 문제”라며 새 협정에서 반도체와 같은 핵심 산업재를 원활히 조달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임을 시사했다.
대중 수출 통제에 대해서는 “민감한 상품을 중국 등 독재국가에 수출하지 않도록 조율하는 것도 협정의 주요 내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반도체 장비에 대해 수출 통제를 하고 있지만 중국이 미국의 동맹국을 통해 그 장비를 얻을 수 있다면 이는 효과적이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이와 함께 러몬도 장관은 미국 내 반도체 생산 지원에 배정된 예산이 중국 내 생산을 늘리는 데 사용되지 않도록 법제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바이든 정부는 인텔이 추진한 중국 내 반도체 생산 확대 계획을 안보상의 이유를 들어 무산시킨 바 있다. 이처럼 미국이 아시아 산업 네트워크에서 중국을 배제한 새 공급망을 구축하겠다고 나서면서 글로벌 통상 환경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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