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된 올해 세무사 시험 결과를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2차 시험에서 치러진 한 과목의 과락률이 예년보다 현저하게 높아지면서 일반 수험생들이 대거 탈락한 반면 해당 과목을 면제 받은 공무원들의 합격률이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채점 기준을 공개하라는 수험생들의 요구를 시험 운영 기관이 거부하면서 집단소송까지 추진되는 분위기다. 과거부터 세무사 시험을 둘러싼 공정성 시비가 여러 차례 제기됐던 만큼 이번 사태를 계기로 시험 제도 전반을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14일 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올해 9월 치러진 세무사 2차 시험의 ‘세법학 1부’ 과목 과락률이 82.13%에 이른다. 2차 시험에서 치르는 네 과목 가운데 한 과목이라도 과락(40점 이하)하면 탈락 처리되는 기준에 따라 세법학 1부에서만 3,254명의 수험생이 탈락했다. 이 과목의 앞선 5개년도(2016~2020년) 평균 과락률이 38.5%, 과락 인원이 1,737명이었던 점에 비춰보면 예년의 두 배에 가까운 인원이 탈락했다.
시험 난이도가 크게 높아지면서 반사이익을 본 수험자들은 경력 20년 이상의 세무 공무원들이다. 이들은 1차 시험에 더해 2차 시험 중 세법학 1·2부 과목을 면제 받는다. 이에 따라 전체 합격자 중 20년 이상의 세무 공무원 비율은 2016~2020년 평균 3.02%에서 올해 21.39%로 7배나 급증했다. 1차 시험만 면제 받는 경력 10~19년의 세무 공무원까지 합치면 올해 시험 합격자 중 세무 공무원은 33.57%(2016~2020년 평균 7.4%)에 달한다.
시험 난이도 논란은 결국 ‘채점 부정 의혹’으로 번졌다. 수험생들의 모임인 세무사시험제도개선연대 관계자는 “세법학 1부는 세 개 문제로 이뤄진 20점 배점의 주관식 시험이었는데 점수를 공개한 수험생 중 0점을 맞은 사람들도 많아서 인위적인 점수 조정이 있었는지 의심이 간다”며 “200명 넘는 연대 회원들이 채점 기준을 공개하라는 정보공개 청구를 했지만 (공단이) 응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공단은 특정 집단에 유리하도록 합격률을 조정한 바 없다고 반박했다. 채점 기준 공개 요구에 대해서도 공단은 “세부 기준이 공개되면 공정한 업무 수행에 지장을 줄 수 있다”며 “공공기관 정보공개법의 비공개 대상 정보 예시에도 ‘시험’이 제시돼 있다”고 불가 입장을 밝혔다. 이에 개선연대는 정보공개 청구 거부 처분 취소 소송 등의 집단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세무사 시험 결과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당초 세무사 시험은 국세청 산하 국세공무원교육원에서 주관했지만 국세공무원 수험생이 많다는 특성상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자 2009년부터 공단으로 이관됐다. 하지만 2019년에도 2차 시험의 회계학 문제가 시험 2주 전에 있었던 ‘국세공무원 실무능력평가’와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공단은 “국세청과 공단은 조직이 다르기 때문에 문제를 사전에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해명했다.
공단이 이번 시험 결과를 명확히 소명하고 나아가 시험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8일 페이스북에 “공단은 난이도 조절 문제라는 말만 반복할 뿐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가 시험 전 과정에 대한 특별감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의 경영학과 교수는 “세무사 시험은 합격 점수가 워낙 들쭉날쭉해서 난이도 관리가 잘 안 된다는 평가가 있다”며 “출제와 채점 가이드라인을 보다 철저히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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