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치러진 대만 국민투표에서 정부 정책에 제동을 거는 4개 안건이 모두 부결되면서 차이잉원 총통이 이끄는 민주진보당(민진당) 정부가 승리했다. 특히 락토파민 함유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안건은 미국과의 경제통상 및 안보 협력 강화라는 측면에서 차이 정부가 추진해왔다. 이에 대해 야당은 국민건강을 이유로 반대했고 국민투표까지 제안했지만 이번에 국민의 동의를 얻는데 실패한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가 강화되는 반면 중국과의 갈등은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19일 대만 연합보에 따르면 대만 중앙선거위원회는 개표 결과 전날 국민투표에 부쳐진 4가지 안건이 모두 부결됐다고 밝혔다. 국민투표 총 투표율은 41%로, 약 810만 명의 대만인이 참가했다 세부적으로는 ▲ 락토파민 함유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금지(반대 51.21%, 찬성 48.79%) ▲ 제4원전 상업 발전 개시(반대 52.84%, 찬성 47.16%) ▲ 타오위안의 조초(藻礁·산호의 한 종류) 해안에 건설 중인 천연가스 도입 시설 이전(반대 51.63%, 찬성 48.37%) ▲ 국민투표일을 대선일과 연계(반대 51.04%, 찬성 48.96%) 등이었다.
이들 안건은 모두 야당인 국민당이 제안한 것이어서 사실상 국민당의 패배다. 차이잉원 총통은 18일 밤 직접 발표한 담화에서 “국민투표를 통해 대만 인민이 세계로 나아가겠다는 명확한 신호를 전달했다”고 평가했다.
가장 쟁점이 된 것은 락토파민 함유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금지 안건이었다. ‘단순히 ’문제 돼지고기‘의 수입 금지로도 해석할 수 있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돼지고기를 수출하는 미국과의 경제협력 이슈로 연결되면서 논란을 불렀다.
앞서 차이잉원 정부는 작년 12월 국민당 등 야당의 극렬한 반대에도 성장촉진제 락토파민이 포함된 미국산 돼지고기의 수입을 허용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통해 현재 편중돼 있는 대중국 경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였다.
지금까지 미국은 대만의 락토파민 함유 돼지고기 수입 금지가 대만·미 FTA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지목하며 압력을 가해왔다.
차이 정부의 수입 허용 이후 양국은 FTA의 전 단계로 평가되는 무역투자기본협정(TIFA) 협상을 재개했다. 즉 대만 정부가 락토파민 함유 돼지고기 수입을 결정힌 것은 경제 협력 강화 문제와 함께 미국과의 전방위 관계 강화를 위한 큰 틀의 양보 성격도 강했다. 중국의 대만에 대한 압력이 커지는 상황에서 미국에의 안보 의존도는 높아지는 상황이다.
결국 야당이 ‘국민 건강 위협’ 프레임으로 국민투표를 성사시키고 공세를 강화한 상황에서도 다수 대만인이 차이 정부의 미국산 락토파민 함유 돼지고기 수입 결정을 이해하고 수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차이 총통은 앞서 17일 밤 총통부 앞 거리에서 진행된 대규모 유세에서 미국 돼지고기 수입 문제를 ‘식품 안전 문제’가 아니라 대만이 중국 의존에서 벗어나 세계 시장으로 나아갈 수 있느냐와 관련된 ‘경제통상 문제’라고 호소했다. 그는 “대만은 반도체와 전자 산업에서 국제적으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지만 전통 산업은 여전히 관세·비관세 장벽에 부딪힌 탓에 반드시 양자 또는 역내 FTA를 통해 국제시장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외에 관심을 모은 안건은 ‘제4 원자력발전소 상업발전 개시’였는데 역시 부결됐다. 이에 따라 차이잉원 정부의 탈원전 정책도 그대로 유지되게 됐다. 대만 제4 원전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여파로 거의 완공된 상태에서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돼 봉인된 상태다. 대만에는 1∼4 원전이 있는데 이 중 제4 원전을 제외한 나머지 원전들은 노후화해 이미 가동을 중단했거나 곧 가동이 중단될 예정이다.
한편 결과적으로 집권 민진당으로서는 이번 국민투표를 제안한 국민당에 사실상 완승함에 따라 2022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는 물론 2024년 총통·국회의원 동시 선거 지형에서도 유리한 입지를 차지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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