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서 친중 성향의 야당인 국민당이 제안한 ‘락토파민 함유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금지’ 국민투표가 부결되는 등 민주진보당이 국민투표에서 완승했다. 대만 국민들이 중국과 대립각을 세워온 차이잉원 총통의 손을 들어준 셈이라 친미 노선을 추구하는 차이 총통의 국정 운영에 한층 힘이 실릴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중국과 대만 간 갈등 양상은 보다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19일 대만 연합보에 따르면 선거관리위원회는 전일 치러진 대만 국민투표에서 “4개 안건이 모두 부결됐다”고 밝혔다. 이번 국민투표가 차이 총통에 대한 중간 평가 성격이 강했던 만큼 민진당의 승리는 큰 의미를 가진다는 분석이다.
민진당의 역전승…국정 장악력↑
이날 국민투표 총 투표 참가율은 41%로 약 816만 명의 대만인이 참가했다 세부적으로는 △락토파민 함유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금지(반대 51.2%, 찬성 48.8%) △제4원자력발전소 상업 발전 개시(반대 52.8%, 찬성 47.2%) △ 타오위안의 산호 해안에 건설 중인 천연가스 도입 시설 이전(반대 51.6%, 찬성 48.4%) △ 국민투표일을 대선일과 연계(반대 51.0%, 찬성 49.0%) 등이었다. 차이 총통은 개표 결과가 나온 지난 18일 밤 발표한 담화에서 “국민투표를 통해 대만 국민이 세계로 나아가겠다는 명확한 신호를 전달했다”고 평가했다.
가장 쟁점이 된 안건은 락토파민 함유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문제였다. 가축 성장 촉진제인 락토파민이 이슈가 됐는데 겉으로는 대중의 건강과 관련된 문제로 보이지만 대만·미국·중국의 복잡한 삼각관계가 녹아 있다.
당초 논란은 중국 경제에 대한 의존을 낮추고 미국과의 협력 강화를 원하던 차이 정부가 지난해 락토파민 함유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을 전격 허용하면서 시작됐다. 대만은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원했는데 미국은 대만에서 먼저 돼지고기와 쇠고기 수출 장벽을 없애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美 밀착’ 차이잉원 승부수 통해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허용에 대해 대만 축산 업계 등은 강하게 반발했고 이에 힘입어 야당인 국민당은 “정부가 국민 건강을 위협한다”며 국민투표를 제안했다. 대만 법률은 유권자의 1.5%인 30만 명의 서명을 받으면 국민투표를 제안할 수 있다.
앞서 ‘선물’을 받은 미국도 호의를 보였다. 미국은 FTA의 전 단계로 평가되는 무역투자기본협정(TIFA) 협상을 지난 6월 재개했다. 이어 이달 9일에는 중국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 바이든 대통령이 주도한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대만을 초청하기도 했다.
차이 총통은 이번 국민투표에 사활을 걸었다. 그는 앞서 17일 밤 총통부 앞 거리에서 진행된 대규모 유세에서 “미국 돼지고기 수입은 식품 안전 문제가 아니라 대만이 중국 의존에서 벗어나 세계 시장으로 나아갈 수 있느냐와 관련된 경제 통상 문제”라고 호소했다.
국민투표 결과는 당초 가결될 것이라는 각종 여론조사와 달리 근소한 차이로 ‘부결’됐다. 블룸버그통신은 “대만 유권자들이 차이 정부의 미국·중국 정책을 지지하는 것이 증명됐다”며 “내년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도 민진당이 한층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됐다”고 평가했다.
中 “주민이익 배신” 떨떠름
안건 자체는 직접 관련이 없지만 결과적으로 중국으로서도 타격이 될 수밖에 없게 됐다.
대만인들이 중국보다 미국을 선호한다는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관영 매체의 모순적인 보도에서도 이런 상황을 볼 수 있다.
관영 환구시보는 19일 사설에서 투표 배경은 쏙 빼놓고 락토파민에만 집중하면서 “민진당이 주민의 이익을 배신했다”고 주장했다. 환구시보는 “락토파민이 함유된 돼지고기를 수입하겠다는 태도는 국민의 건강을 희생해 미국을 껴안고 외세에 무엇이라도 주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외에 관심을 모은 안건은 ‘제4원전 상업 발전 개시’였는데 역시 부결됐다. 이에 따라 차이 정부의 탈원전 정책도 그대로 유지된다. 대만 제4원전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여파로 거의 완공된 상태에서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돼 봉인된 상태다. 대만에는 1∼4 원전이 있는데 이 중 제4원전을 제외한 나머지 원전들은 노후해 이미 가동을 멈췄거나 곧 가동이 중단될 예정이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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