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 한시 허용된 원격의료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진료건수가 312만 건을 넘어서면서 일상 속 '뉴노말'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동네의원 등 1차의료기관에서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자들을 대상으로 모니터링하는 방식부터 순차적인 도입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백남종 분당서울대병원장은 21일 국회에서 ‘코로나19 이후 뉴노멸, 비대면진료의 미래’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환자의 편의성과 미래의료 관점에서 바라볼 때 원격의료 도입의 당위성은 충분하다"며 "지금과 같은 격리?재난상황과 의료 취약계층부터 시작해서 만성질환 모니터링, 단순 재처방, 남성의학, 공공의료 순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간 원격의료를 산업적 측면에서 바라보다 보니 반대하는 의견이 많았는데, 의료량이 점차 증가할수록 보건의료체계가 효율적으로 지속 가능하려면 비대면 방식의 모니터링이 불가피하다는 견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어렵사리 물꼬를 튼 원격의료가 정착하려면 "적정 수가와 의료전달체계 유지를 전제로 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식 인정될 필요가 있다"고도 강조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원격의료의 효용성을 경험한 국민들의 여론도 빠르게 바뀌어가는 분위기다. 소비자단체 컨슈머워치 산하 의료소비자위원회가 진행한 대국민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000명 중 66%가 '비대면 진료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부정적이라고 응답한 이유로는 응답자의 93%가 '오진 가능성'을, 77%가 '의료사고 시 책임 소재의 불확실성'을 꼽았다. 원격의료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큰 컬림돌로 작용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배송시스템을 활용한 의약품 배송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응답이 72.9%로 부정(27.9%)보다 3배 가량 많았다. 향후 의약품 배송이 제도화될 경우 이용할 의사가 있다고 밝힌 응답자수는 79%에 달했다.
장지호 닥터나우 대표는 "코로나19 상황에서 한시 허용된 비대면 진료건수가 312만 건에 달한다. 오진 및 의료사고는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고, 76.5%가 1차의료기관에서 이뤄졌다"며 "달라진 환경에 맞는 비대면진료 제도화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 단계에선 의원급 1차의료기관을 중심으로 당뇨, 고혈압과 같은 경증 및 만성질환자의 모니터링 수단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대면진료의 대체가 아닌 보완 수단으로서 제도를 다듬어 가며 차츰 범위를 넓혀갈 필요가 있다는 중론이다. 앞서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9월 고혈압, 당뇨, 부정맥 등 경증 만성질환자 중 재진 환자에 한해 원격모니터링을 제도화한다는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의료 원격모니터링'을 '자택 등 병원 밖의 환경에서 디지털헬스케어기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측정한 환자 유래의 데이터를 병원 등으로 전송해 의료인에게 데이터를 분석 받고, 이에 따른 진료 등의 권고를 받는 것'으로 규정하고, 대형병원 쏠림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시행 주체를 의원급 의료기관에 한정한 것이 특징이다.
정부도 원격의료 제도화 필요성에 공감하고, 의료계와 협의를 거쳐 중장기적 도입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고형우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코로나19 상황이 진정되면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와 원격의료 제도화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며 "의료계 등 전문가와 시민단체 등의 의견을 수렴해 국내 실정에 맞는 중장기 정책 방향을 수립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복지부가 상정된 법안을 검토 중으로, 1차의료기관에서 만성질환자, 취약계층부터 대면진료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안을 고려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적정 수가 등 이익제공이 담보될 경우 의료계 참여 가능성도 엿보인다. 이세라 서울시의사회 부회장은 "대한의사협회가 진행한 설문을 보면 의사들 중 5~10%는 비대면진료 참여 의지가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며 "비대면진료를 직접 해야 하는 의사들을 참여시키려면 대면진료 비용 상향 조정, 비대면진료 진찰료 선불화, 의사 1인당 원격의료 환자수 제한 등 제도개선을 통한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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