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인 SF 장르물이 탄생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고요의 바다'가 아직 한국인이 밟아본 적 없는 '달'이라는 미지의 영역을 배경으로, 삶의 가치와 의미를 되짚는다. 리얼함이 돋보이는 우주선과 달 표면, 발해기지 세트, 그리고 그 속에서 생동감을 더하는 베테랑 배우들까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투성이다.
22일 오전 넷플릭스 시리즈 '고요의 바다'(감독 최항용) 제작발표회가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됐다. 배우 배두나, 공유, 이준, 김선영, 이무생, 이성욱과 최항용 감독, 박은교 작가, 제작자인 배우 정우성이 참석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고요의 바다'는 필수 자원의 고갈로 황폐해진 근미래의 지구에서 특수 임무를 받고 달에 버려진 연구기지로 떠난 정예 대원들의 이야기를 담은 SF 미스터리 스릴러다. 끝없이 펼쳐진 희고 검은 땅 한가운데 위치한 발해기지에는 그들이 상상치도 못한 일들이 펼쳐진다.
작품은 대한민국 시리즈 최초로 달을 소재로 했다. 앞서 '승리호'가 우주를 배경으로 한 것과는 사뭇 다르다. 생경한 영역인 달과 비밀스러운 연구기지에서 일어나는 서스펜스가 핵심이다. 최항용 감독이 2014년 미쟝센 단편영화제를 통해 주목받은 동명의 단편 영화가 원작이다. 최 감독은 "단편은 학교 졸업 작품으로 찍었던 작품이다. 당시에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걸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많았는데 달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잘 없었다. 많이 다루지 않았던 무대를 배경으로 쓰고 싶었는데, 달은 지구에서 가깝지만 우리가 아는 정보가 없더라"며 "그런 점에 매력을 느끼고 달을 배경으로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박은교 작가는 "단편 시나리오를 먼저 볼 기회가 있었는데 장편이나 상업 영화를 제작하는 분들도 도전하기 힘든 장르였다. 졸업 작품으로 도전한 게 놀라웠고, 단편에서 설정해 놓은 세계관이나 설정이 호기심을 불러일으켜더 많이 보고 싶은 갈증이 일어나더라"며 "나도 자극이 되고 더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다"고 덧붙였다.
정우성이 배우가 아닌 제작자로 나섰다는 것 또한 포인트다. "단편 영화를 보자마자 매료됐다"는 정우성은 "설정이라는 것이 한 영화의 세계관이 되는 것인데, 독특한 설정이 굉장히 좋았다. 많은 SF 영화가 있지만 한국에서는 그걸 구현한다는 것 자체는 엄두가 안 나던 시대였다"며 "이 작품이 '똑똑한 설정 안에서 한국적인 SF를 할 수 있는 소재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우성이 제작·총괄 프로듀서로 나서면서 '고요의 바다'는 넷플릭스 시리즈로 확장됐다. 최 감독은 "더 큰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단편에서는 기지 내 이야기만 집중했지만, 시리즈로 오면서 단순히 대원들의 생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지구의 생존에 대한 이야기와 고민할 거리를 던져주지 않았나 싶다"고 설명했다.
배두나가 연기한 송지안 박사는 우주 생물학 분야에서 손꼽히는 과학자로, 5년 전 사고의 원인을 찾기 위해 발해기지 프로젝트에 합류한다. 특수 임무보다 사고에 얽힌 단서를 찾는 것에만 열중하면서 대원들과 갈등을 빚는다. 배두나는 "국내에서 SF, 특히 달에 관한 영화에 도전할 수 있을까 싶었다"며 "최 감독님의 단편 영화를 봤는데 한정된 예산과 조건 속에서 정말 놀랍도록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배우들의 감정선, 연기에 초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서 굉장히 놀라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분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이 작품이라면 우리나라에서 만든 우주 영화에 배우로서 도전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고 치켜세웠다.
공유가 맡은 한윤재 역은 우주항공국의 최연소 탐사 대장으로 냉철함이 돋보이는 인물이다. 송지안 박사와 사사건건 부딪치며 긴장감을 유발한다. 공유는 장르물에 대한 갈증이 있던 시기에 제안을 받게 됐다고. 그는 "시나리오를 보고 '유레카' '느낌표 10개' 정도의 느낌이었다"며 "간단하게 말하자면 기발한 상상력과 독창적인 소재, 내가 기다렸던 장르물, 그리고 정우성이어서 선택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에 정우성은 손하트를 그리며 화답해 훈훈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한윤재를 통해 거친 이미지로 변신한 공유는 "전직 군인 출신이라는 설정이 있어서 까맣게 그을린 모습으로 고단함도 보였으며 좋겠고, 목에 타투같은 경우도 그런 이미지를 부각시킨 것이다. 군 부대 마크라고 생각하면 된다"며 “일부러 '터프한 모습을 보여야지'라고 생각해서 연기하지 않았다. 그간 작품에서 보이지 않았던 모습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관련기사
국방부 엘리트 출신의 수석 엔지니어 류태석 역은 이준이 맡았다. 류태석은 목숨을 건 위험한 임무에 자원해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우주 관심 많아서 정보를 찾아보는 걸 좋아했다"는 이준은 "이런 시나리오가 있어서 굉장히 신기했다. 무조건 안 할 이유가 없고, 재밌는 도전이라고 생각했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김선영은 대원들의 생명을 책임지는 팀 닥터, 홍닥으로 분했다. 홍닥은 의사로서 사명감이 돋보이고, 동료들에게 다가갈 때나 임무에 나설 때 스스럼이 없다. 송지안 박사가 기지의 비밀을 파헤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무생이 연기한 탐사대의 보안 팀장 공수혁은 어떤 일이 눈앞에 닥쳐와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임무에 매진하는 인물이다. 이성욱은 우주선 조종사 김썬 역을 맡아 작품에 유쾌한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김썬은 자칭 우주항공국의 탑건으로, 긴장감 가득한 대원들 사이에서 타고난 말주변으로 분위기를 바꾼다.
정우성은 화려한 캐스팅에 만족스러워했다. 그는 "단편의 반짝반짝함, 겁 없는 도전을 장편으로 만들 때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이 작품에 가장 어울릴만한 배우들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시나리오를 읽을 때는 상상할 수 있으나 현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상상으로 연기하는 것은 또 다른 도전 속의 고단함일 수 있다"며 "그걸 기꺼이 해줄 수 있는 배우는 누구일까 고민하다가 이 배우들이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접근했지만 두려웠다. 응해줬을 때 기쁨은 잠시고, 현장에서 현실적인 구현은 제작사에서 만들어줘야 하니까 기쁨과 설렘, 두려움이 계속해서 공존했다"고 털어놨다.
정교하게 구현된 달, 발해기지 세트 등은 현실감을 높이는데 큰 몫을 했다. VFX는 물론 LED 월(Wall)까지 쓰인 것이 '고요의 바다'만의 차별점이다. 최 감독은 LED 월에 대해 "블루 스크린에서 촬영하고 후반에 CG를 합성해야 하는 것을 촬영할 때 완성된 배경을 보면서 촬영할 수 있는 기술"이라며 "여러 가지 장점이 있었는데 배우들이 실제 배경을 보면서 연기할 수 있어서 더 몰입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또 "달에 있는 기지다 보니 달을 구현할 때 큰 규모의 스튜디오가 필요했다. 다섯 개 정도의 스큐디오를 사용했는데 2,700평 정도의 규모였다"며 "기술적으로 난도가 높은 세트가 있었고, 배우들이 진짜라고 느끼고 몰입할 수 있도록 질감이나 무게 디테일한 부분을 미술 감독님과 상의해서 제작했다"고 말했다. 이준은 "화면에 안 나오는 부분들까지 굉장히 디테일해서 정말 신기했다"며 "너무 디테일하다 싶은 것은 무전기나 전자 기기 안 배터리에 내 이름이나 생일이 작게 새겨져 있더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고요의 바다'는 올해 전 세계 신드롬을 일으킨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 '지옥'의 다음 타자다. 앞선 두 작품이 한국 고유의 정서와 세계적 보편성의 적절한 조화로 사랑을 받은 터라, 한국적 SF인 '고요의 바다'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 작가는 "시나리오 작업할 때 창작자가 발 딛고 있는 땅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영향을 받는 모든 것이 창작 근원이다. '한국적인 걸 심어야지'라는 의도를 갖고 접근하는 창작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라며 "우리도 모르게 갖고 있는 환경과 기질이 다른 나라의 작품에 비해 뜨겁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나를 중심으로 보지 않고 관계를 중요시하는 문화이고, 감정적으로 해석하는 분위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K-콘텐츠만의 특징으로 예쁘게 봐주면 즐거운 일인데 그런 걸 의도하면서 한 적은 없고, 주목받고 관심 가져줘서 감사할 뿐이다"라고 했다.
정우성은 "이어달리기처럼 되고 있어서 부담된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작품 고유의 세계관과 정서가 다르기 때문에 앞 작품들의 성공과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고요의 바다'가 갖고 있는 고유의 정서가 어필되고, 세계인들에게 보편적이 사랑을 받을 수 있느냐'이지,' 꼭 쟁취할 거야'라며 막연한 욕심을 쫓지 않는다"며 "여러분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매 작품마다 숙제인데,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라고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한편 '고요의 바다'는 오는 24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여 개 국에서 공개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