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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은 ‘소득주도성장’ 연장…민간 주도형 투자 경제로 바꿔야” [청론직설]

◆표학길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文정부 부동산정책 등 총체적 실패작, 속도조절도 못해

나랏빚, 가계·기업보다 더 심각…연금 포함 대수술해야

한국 3~4% 성장 여력, 생산성 높이기 위해 총력전을

공정법·금산분리 등 풀어 투자 물꼬 터야 신산업 태동

표학길 서울대 명예교수가 27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소득 주도 성장과 임대차 3법 등을 폐기하고 '민간 주도형 투자 경제'로 바꾸는 데 국가 에너지를 분출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호재 기자




문재인 정부 임기 막바지이지만 인플레이션 압력과 긴축 움직임, 부동산 정책 혼선 등으로 불확실성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대선 후보들은 포퓰리즘에 빠져 국가 미래와 경쟁력 확보를 위한 방책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경제학계 원로인 표학길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27일 서울경제와 가진 인터뷰에서 “소득 주도 성장과 임대차 3법 등을 폐기하고 정부 주도의 성장을 ‘민간 주도형 투자 경제’로 바꾸는 데 국가의 에너지를 모아야 한다”며 “대선 후보들과 차기 정부는 정책 프레임을 여기에 맞춰 설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들어선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된다”며 “우리는 아직 3~4%의 성장을 할 여력이 있으므로 이를 위해 생산성을 끌어올릴 전략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표 교수는 특히 “가계·기업 부채보다 나랏빚 문제가 더 심각하다”며 “나라가 결국 책임져야 할 연금과 공기업 채무 등 잠재적인 국가 부채를 반드시 수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현 정부의 정책을 종합 평가한다면.

△총체적 실패작이다. 경제 현실에 맞지 않는 정책을 폈고 속도 조절도 실패했다. 소득 주도 성장은 이론적으로는 엉터리가 아니다. 일부 좌파 경제학자들이 소득 불평등을 막겠다며 제시했다. 하지만 이들도 미국 등 경제 규모가 큰 국가는 몰라도 한국·네덜란드 등 소규모 개방경제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경고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수출 감소→소득 감소→투자 위축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을 반영하지 않고 근로시간 규제를 경직되게 시행해 치명적 손실을 입혔다. 일자리 창출을 명분으로 공기업의 정규직화를 강행하니 노동시장에 큰 부담을 줬다. 결국 빈부 격차만 커졌다. 소득 주도 성장과 잘못된 부동산 정책 등이 경제 전체에 내상을 입힌 만큼 차기 정부는 이를 교정하기 위한 슬로건과 청사진, 정책 프로그램을 최우선적으로 내놓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왜 실패했다고 보는가.

△현 정부는 부동산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갈라치기 하는 데 몰두했다. 시장 기능을 무시하고 규제 일변도의 가격통제만 하니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부동산 시장의 부침 과정을 살펴봐야 한다. 노무현 정부 이후 부동산 시장은 잠잠했다. 가격이 안 오르니 공급이 줄었다. 반면 10년 가까이 사회구조는 1인 가구로 급속하게 변했고 양질의 신규 주택에 대한 이들의 잠재수요가 폭증했다. 문재인 정부가 수요·공급을 처음부터 잘못 짚은 것이다. 집권 즉시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풀었어야 했다. 서울시와 협의해 고층을 허용하고 젊은 사람이 선호하는 역세권·강변 등의 공급 물꼬를 텄어야 했다.

-임대차 시장도 문제가 많은데.

△부동산 정책의 결정적 패착이 임대차 3법이다. 우리처럼 임대차 시장이 완전경쟁인 나라가 없다. 그런데 임대차법을 시행해 임차인을 내쫓고 말았다. 임대차 시장이 붕괴되며 양질의 주택에 대한 초과수요를 촉발하고 가격 폭등의 탄약고가 됐다. 그런데 누구도 이를 시의적절하게 지적하고 폐기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야당에서도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징벌적 세제에 대한 불만도 많다. 여당 후보는 이를 무마하기 위해 다주택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를 주장하다가 청와대와 충돌하기도 했다.

△종합부동산세 급증, 양도세 중과 등 세금 폭탄은 1주택자까지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다주택자가 아니라 1주택자의 세 부담 완화다. 양도세, 취득·등록세 등 거래세는 1가구 1주택 면세 한도를 대폭 늘리고 세율을 낮춰야 한다. 종부세는 명백한 이중과세인 만큼 폐지하고 재산세로 통합해야 한다. 이것이 시장 기능을 회복하는 길이다.

-정부는 집값 급등의 원인으로 유동성 과잉을 얘기한다.

△정부만의 실책으로 보기 힘든 측면도 있다. 한국은행도 실수했다. 코로나19로 기준금리를 낮춘 것은 근거가 있지만 코로나19 이전에도 금리 인하를 주장했던 것은 문제가 있다. 적정 금리를 유지했으면 저축을 많이 하고 부동산으로 빠져나갈 돈도 상당히 막았을 것이다. 금리가 올라가지 않으니 유동성 함정에 빠져 투자도, 경제 확장도 이뤄지지 않았다. 1~2%의 이자로는 금리를 올리든 안 올리든 민간이 반응하지 않고 자산 시장의 초과수요만 생긴다.

-내년 경제의 주요 복병을 꼽는다면.

△코로나19 확산에 영향을 받겠지만 V자형 회복은 힘들고 L자형이 될 것이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돼 실질성장률은 당분간 낮은 수준이 될 수밖에 없다.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이 과거 오일쇼크처럼 한꺼번에 일어나지 않고 지지부진하게 나타날 것이다. 슬로플레이션 형태다. 또 하나 변수는 미국과 중국의 충돌이다. 우리는 한미 안보 동맹을 기반으로 안보·경제정책의 중심을 잡아나가야 한다. 경제와 안보를 분리할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중국은 자기 기준과 필요에 따라 움직이고 한국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우리는 중간자 역할을 할 핵도 없고 힘도 미약하다. 우리 입장에 따라 국제적 힘의 균형이 깨질 때 중간자 역할을 할 수 있다.



-긴축이 시작됐다. 가계·기업·정부의 부채가 총 5,000조 원을 넘는데.

△코로나19가 1년 더 가면 최악의 경우 전체 가계 대출의 3분의 1 정도가 부실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0조 원이 넘는 중소기업 대출을 내년 3월까지 상환 유예했지만 상당 규모 부실이 될 수 있다. 더 심각한 것은 나랏빚이다. 정부 부채 급증은 젊은 세대에게 치명적 부담을 넘겨주는 것이다. 국가 부채는 나라가 책임질 각종 공기업·연금 부채까지 범위를 넓힌 D4 기준으로 봐야 한다. 잠재적 국가 부채들에 대해 꼭 수술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비대해진 곳이 공기업이다. 지방마다 개발공사가 있고 준공기업이 몇 개씩 있다. 지방채 등으로 부채를 늘리고 있다. 성남도시개발공사 같은 곳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공무원 밥그릇 채워주는 것이다. 공기업의 독점적 경영이 대장동 사태 같은 부패를 낳았다. 차기 정부는 방만해진 공기업을 반드시 정비해야 한다.

-잠재성장률 하락도 걱정이다. 2030년 0%대 잠재성장률 전망도 나온다.

△우리가 선진국이 된 것처럼 착각하면 곤란하다. 우리 경제의 중장기 경로를 볼 때 아직 3~4% 성장에 타깃을 둬야 한다. 2030년대에도 2%대를 유지할 수 있다. 물론 전제가 있다. 저출산 고령화를 메울 생산성 향상 전략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전직 훈련 강화 등으로 1인당 유효 생산성을 끌어올리면 3~4% 성장이 가능하다.

-국가 경쟁력도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1970년대 개발도상국 때 가장 잘한 정책이 수입을 개방하고 금지 품목만 정하는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바꾼 것이다. 규제도 마찬가지다. 풀어주고 안 되는 것만 묶어야 한다. 요즘 공무원들은 책임을 피하려 위원회 등에 과제를 떠넘긴다. 기관을 없애는 게 규제 완화의 시작이다. 또 주목할 것이 공정거래법이다. 30개 대기업집단지정 제도는 40년 전에 만든 것이다. 이를 풀고 골목 상권 보호 규제는 다른 방법으로 하면 된다. 골목 상권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공용 주차장 같은 것을 정부가 지어주는 것이다. 대기업, 중소기업, 골목 시장의 벽을 쌓지 말고 인프라 투자로 보조하면 된다. 파격이 없으면 규제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노동 경쟁력도 취약하다.

△지금 노동정책은 합리성을 잃고 교조주의적 가치관에 의존하고 있다. 주 52시간 규제는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되 업종별·규모별로 민간에서 정할 수 있게 유연성을 줘야 한다. 강성 노조가 계속되는 회사는 망할 수밖에 없다. 노조도 강성을 이어가면 도태된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주력 산업은 퇴조하는데 신산업은 잘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신산업이나 벤처는 주력 산업에서 파생된다. 미국도 IBM 등 기존 주력 기업에서 엔지니어·경영진이 옮겨가 애플·아마존 등을 탄생시켰다. 공정거래법 등 주력 기업 투자를 막는 규제를 풀어야 한다. 금산 분리도 시효가 지난 규제다. 정부가 금융 산업 진입을 허용한 카카오 등은 본래 산업자본이다. 그런데 우리금융은 민영화를 지연시키면서 관치를 하고 있다. 대기업 컨소시엄 형태라도 민영화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차기 정부의 경제정책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정치가 중요하다고 제자들에게 누누이 강조한다. 정치가 선진화하지 않은 나라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가계·기업의 생산성을 올리려면 정치가 제대로 돼야 한다. 차기 정부는 정부 주도 성장을 민간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지금 정국을 보면 새 정부 정책 기조도 그리 밝지 않다. 여당의 기본소득 공약처럼 ‘소득’을 건드리면 안 된다. 기본소득은 실패한 소득 주도 성장의 연장이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절반 이상이 정권 교체를 바라는 여론에 화답하는 가시적 조치를 해야 한다. 부동산·조세 등에서 야권의 정책 공조가 필요하고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분산할 연정 구상도 가능하다. 이 모든 것보다 중요한 점은 새로운 소득 창출을 위해 국가 에너지를 분출하는 것이다. 차기 정부가 소득 주도 성장 정책과 임대차법 등을 폐기하고 ‘민간 주도형 투자 경제’로 정책 프레임을 설정해야 경제가 정상적으로 돌아간다.

He is…

1948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경기고,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클라크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2년간의 계량경제학 세미나 과정을 이수했으며 1981년부터 32년 동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초청 연구교수,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과 일본 도쿄대 경제학부 초청교수 등을 지냈다. 서울대 국가경쟁력센터 소장과 한국계량경제학회·한국국제경제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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