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이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약속을 깨버린 이유를 알지 못한다. 아무리 규범을 헌신짝처럼 여기는 시대라 해도 미합중국의 연방 상원의원이 방금 대통령과 합의한 중요한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파기하지는 않으리라 믿었다. 맨친의 말 뒤집기로 바이든 대통령의 ‘더 나은 재건 계획’은 흔적조차 거의 남기지 않은 채 침몰할 것이다. 필자는 거창한 규모는 아니지만 중요하기 그지없는 바이든의 지출안이 물 건너갈 경우 심각한 인적·경제적 비용이 발생하리라 확신한다.
번듯한 사회복지 어젠다가 물거품이 된다면 수백만 명의 어린이들은 부실한 건강과 저소득의 덫에 치인 채 성년기를 맞게 될 터이다. 또 다른 수백만 명은 제대로 된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할 것이고 행여 병에라도 걸린다면 경제적 파탄을 겪게 될 것이다. 적절한 의료보험이 없는 사람들에게 다반사처럼 일어나는 일이다.
단순한 추측이 아니다. 정부 지원을 받고 성장한 저소득 가정의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어린이들에 비해 한층 건강하고 생산성 높은 성인으로 성장한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무보험자들은 종종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거나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호된 의료비 청구서를 받아 들게 된다. 이제까지 나온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후변화를 경감하는 정책은 대기의 질을 개선해 향후 10년에 걸쳐 중대한 건강 증진 효과를 낼 것이다.
미국 사회안전망의 취약성은 그에 준하는 경제적 결과를 수반한다. 우리의 1인당 국민총생산(GDP)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지만 이는 미국인 근로자들이 외국 노동자들보다 휴가 일수가 적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근무시간이 길기에 생산량이 많을 뿐 동일한 조건을 가상하면 우리가 뒤처진다는 뜻이다. 팬데믹 이전에도 한창 일할 연령대에 속한 미국인들의 취업률은 캐나다 혹은 여러 유럽 국가 국민들에 비해 낮았다. 왜 그럴까. 성인들이 계속 근로 인력으로 남아 있도록 지원하는 탁아 서비스와 육아 휴가를 연방정부가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에게 미국인의 삶을 개선할 만한 여력이 있을까. 다른 부유한 국가들이 이를 잘해내고 있다는 사실에 부분적인 대답이 담겨 있다. 바이든의 더 나은 재건 계획 지출안에 대한 맨친의 반대 이유가 뜯어볼수록 허점투성이라는 게 또 다른 부분적 대답이 될 것이다.
맨친은 의회예산국(CBO)이 바이든 지출안의 실제 소요 비용을 ‘4조 5,000억 달러 이상’으로 추산했다는 점을 반대 이유로 제시한다. 아니, 그렇지 않다. CBO 추정치는 이 법안에 담긴 지출 조항이 영구적으로 적용된다는 가정 아래 소요 예산을 산출해달라는 공화당의 요청에 근거해 작성한 것이다. 한시적 지출 항목을 그대로 반영하면 연방 적자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줄어든다. 또 의회는 부양 자녀 세액공제 프로그램을 연장할 경우 아마도 세금 환불 삭감 조치까지 함께 통과시킬 것이다. 다시 말해 적자 중립적인 사회 지출안을 실제 문안 그대로 분석하는 것이 의도적인 가정을 전제로 한 분석보다 이 법안의 통과로 초래될 재정적 영향을 가늠하는 충실한 가이드가 될 것이다.
미국의 국가부채가 “어마어마하다”는 맨친의 주장 또한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백분율로 환산한 GDP 대비 연방이자 지급액 비중은 로널드 레이건 시절의 절반에 불과하고 인플레이션을 감안할 경우 기본적으로 제로라는 사실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인플레이션은 어떤가. 더 나은 재건 계획에서 제안한 지출은 수년에 걸쳐 이뤄지기 때문에 단기적인 예산 수요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따라서 법안 시행 첫 해에 추가되는 적자는 GDP의 0.6%에 불과하고 이 정도로는 인플레이션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 게다가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인플레이션이 수그러들지 않을 경우 금리를 인상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렇게 되면 정부 지출은 더더욱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앞서 밝혔듯이 필자는 맨친의 식언을 초래한 개인적 동기 분석에 끼어들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필자는 폭스뉴스를 통해 밝힌 사회기반시설 지출안 거부 의사를 해명하기 위해 그가 발표한 공개 서한이 주의 깊게 작성한 정책 성명서처럼 읽히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할 따름이다. 그의 서한은 일관성 있는 이념적 선언문처럼 읽히지도 않는다. 공화당이 말하려는 요점을 황급히 주워 담아 얼기설기 엮어놓은 허접한 발표문은 자신의 배신을 정당화하고 자신을 피해자로 묘사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미안하지만 그는 피해자가 아니다. 이 이야기의 피해자는 명백한 약속 파기로 비난을 사고 있는 상원의원 한 명이 아니라 미국 전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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