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딜로이트그룹이 지난해 1월에 앞으로 세상을 지배할 메가 트렌드 일곱 가지를 선정했다. 벌써 1년 전의 일이지만 그 일곱 가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미중 패권 전쟁과 △탄소 중립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제조업 구조 변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한 소비 패턴의 변화 △금융시장 재편 등이다. 다만 이 같은 메가 트렌드에서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 관련 산업 정도만이 제외돼 있을 뿐 우리가 체감하는 이슈들이 모두 담겼다. 언뜻 보기에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 트렌드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를 꼽으라면 단연코 ‘과학기술’이 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은 결국 첨단 기술 확보 경쟁이다. 기후변화를 막고 탄소 중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와 자원 소비 행태가 달라져야 한다. 대체에너지 기술, 자원의 효율적 이용과 재순환 기술 등 과학기술에 의한 해법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하는 것이다. 디지털 변환을 어떻게 수용하느냐에 따라 제조업의 흥망이 결정될 것이며 팬데믹으로 촉발된 온라인화는 상거래에서 교육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진일보한 기술적 솔루션을 필요로 한다.
예전에도 몇 차례 석유 파동과 같은 전 세계적 위기를 겪은 적이 있었지만 당시의 위기들은 정치 외교에서 비롯된 문제였던 만큼 설득과 타협으로 해결이 가능했다. 그러나 요즈음 우리가 맞고 있는 ‘대전환’은 이전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 변화는 전 지구적 문제로서 어느 나라나 예외 없이 맞닥뜨리고 있고 어느 나라도 해결책을 갖고 있지 못하다. 모두 같은 출발선상에 서 있는 것이다. 산업화 시절, 우리의 출발선은 선진국들보다 한참 뒤에 있었다. 선두 주자를 따라잡으려면 엄청난 노력을 해야 했다. 그렇지만 요즘 목도하고 있는 ‘대전환’은 출발선을 새로 긋는 것과 동일해 우리는 선진국들과 나란히 같은 출발선에 서 있는 셈이다. 이제는 남들보다 빠른 속도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방향을 잡아 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게 됐다. 목표로 삼을 선두 주자들이 없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미래의 메가 트렌드들을 꿰고 있는 과학기술이 바로 그 방향일 수밖에 없다. 과학기술을 어떻게 진흥시켜 이 ‘대전환’ 시대에 슬기롭게 대응하느냐에 국가의 명운이 달려 있는 것이다.
과거의 우리 과학기술 진흥 정책의 최종 목표는 경제 발전이었다. 따라서 경제 발전 계획의 일부로 과학기술 연구개발의 구체적 목표와 체계적인 달성 계획이 미리 제시됐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과학기술 연구개발의 숙제는 세상에 없는 기술과 해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알파고가 전 세계적으로 충격을 몰고 왔던 것은 인공지능(AI)이 이토록 빨리 발전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예측하지 못하는 일인데 세부적인 계획을 세워 추진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처럼 철저한 사전 계획에 의한 연구개발 정책도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세상에 없는 기술을 만들어 내려면 전혀 다른 접근이 있어야 한다. 가능성이 있다면 추진해보고 실패하더라도 경험으로 삼아 또 다른 새로운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과학기술 진흥을 추진할 때 시도해야 할 새로운 접근 방법이다.
새로운 시도는 태평성대일 때는 하기 어렵다. 위기일 때 가능하다. 지난 1957년 당시 소련이 발사한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는 전 세계, 특히 미국을 충격에 몰아넣었다. 당시 과학기술의 모든 면에서 소련보다 앞서 있다고 자만하던 미국은 이 일을 계기로 군사는 물론 교육 및 과학기술 분야의 개혁을 시작했다. 1958년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이 설립됐고 체계적인 우주개발에 나서기 시작했다. 급기야 1961년 미국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9년까지 달에 유인 탐사선을 착륙시킨다는 아폴로 계획을 선포했다. 이 선언을 할 당시 미국은 유인 우주선의 지구 궤도 진입에 겨우 성공했을 뿐이었다. 심지어 이 계획의 주역이 될 NASA 내부에서도 실현 가능성을 의심했다. 이처럼 실현 가능성조차 불확실한 일에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한 끝에 결국 1969년 7월 인류 최초로 인간이 달에 착륙하는 인류사에 남을 일을 이뤄냈다. 만약 아폴로 계획이 실패로 끝났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생긴 수많은 발견과 발명들은 이후 과학기술 혁신에 결정적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3월 9일에 대선을 통해 새로운 지도자를 맞는다. 그 지도자는 우리나라의 미래에 있어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인식만으로는 부족하다. 케네디와 같은 비전과 패기로 과학기술이 열어갈 우리의 새로운 미래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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