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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 시대…과학기술 초격차·인재 육성으로 성장엔진 재점화” [청론직설]

◆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새로운 국제질서 부재·文정부의 ‘앙시앵 레짐’ 등 혼란

시스템반도체·미래차·바이오·AI 등 신산업 적극 키워야

포퓰리즘 벗어나 성장과 복지 선순환 구조 정착 절실해

시대정신은 공정…“말 바꾸는 사람에 권력 맡길 수 있나”

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세계 각국이 자국 이익을 놓고 싸우는 무질서와 혼란의 시대가 펼쳐질 것"이라며 "이럴 때일수록 과학기술 초격차확보와 핵심 인재 육성에 국가 명운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서울경제DB




2022년 새해를 맞은 대한민국호(號)의 앞길은 결코 녹록지 않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는 데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도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는 3월 대선을 앞둔 포퓰리즘 경쟁은 정치 리스크에 대한 걱정을 키우고 있다. 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3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세계 각국이 국익을 놓고 싸우는 무질서와 혼란의 시대가 펼쳐질 것”이라며 “이럴 때일수록 과학기술 초격차 확보와 고급 인재 육성에 국가의 명운을 걸어 꺼져가는 성장 엔진을 재점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선거의 해를 맞아 포퓰리즘에서 벗어나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면서 “시스템 반도체, 바이오 헬스 등 미래 성장 동력 키우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연구 활동 중인 권 교수와의 인터뷰는 e메일과 통화로 진행됐다.



-새해에도 대내외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퍼펙트 스톰(초대형 복합 위기)’ 조짐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오는데.

△코로나19의 기세가 꺾일 만하면 새로운 변이가 등장해 시민들의 피로도는 한계에 이르고 있다. 미국 등 세계 각국이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저금리 정책을 펴는 바람에 지난 1980년대 이후 최악의 인플레이션마저 우려되는 상황이다. 미중의 경제·군사적 대결 구도가 더욱 극명해지면서 국제사회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런 불확실성은 지난 30년 동안 국제 질서를 지탱해온 세계화·자유화·개방화라는 정치·경제적 패러다임을 대신할 만한 새로운 이념과 질서가 부재한 탓이 크다. 올해도 서로 타협하고 협력하기보다는 자국의 이익을 놓고 경쟁하는 무질서와 혼란의 세계가 연출될 가능성이 높다.

-다가오는 대선도 우리 사회 전반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 정치적 리스크가 경제성장과 사회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지적도 많다.

△지난 30년 동안 한국 정치는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 간의 경쟁이었다. 그러나 두 세력은 더 이상 국정을 이끌어갈 미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를 끝으로 낡은 경쟁 구도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비전을 가진 세력이 등장했어야 했다. 그러나 탄핵 사태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으나 산업화·민주화 대결 구도는 유효 기간이 만료된 ‘앙시앵레짐(구체제)’처럼 남아 있다.

-집권 세력의 일방적인 국정 운영에 대한 반감도 커지고 있는데.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법 질서와 공정한 절차를 지키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조국 사태에서 보듯이 남의 불공정을 비판해놓고 스스로 불공정과 편법·탈법 행태를 서슴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결과 우선주의’ 때문이라고 본다. 규칙과 질서를 어겨가면서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더 많은 보상을 받는 사례가 허다하다. 권력을 쥔 세력은 법과 제도를 무시한 채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힘으로 밀어붙인다. 적절하고 합리적인 과정을 중시하는 국정 운영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선 지켜야 할 ‘시대 정신’은 무엇이라고 보나.

△국민들은 과정의 공정함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시대 정신이라고 본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힘 있는 자가 옳은 자를 이긴다’는 말이 판치고 있다.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어느 한 편이 규칙을 어긴다면 다른 편도 비슷한 행동을 취하게 된다. 결국 대결과 갈등이 난무하고 경제는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데,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바로 그렇다. 이제 국민들은 편법과 탈법·불공정으로 점철된 결과 우선주의를 원하지 않는다.

-분열된 국민을 통합하고 공정과 상식을 복원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새로 들어설 정부는 눈앞에 보이는 정치적 이익을 기회주의적으로 추구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 다양한 가치관과 이해 관계의 차이를 인정하고 설득과 타협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공정하게 배분하고 공공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의회민주주의를 되살리는 구체적인 정치 개혁 방안은 무엇인가.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의사 결정의 원리는 다수결 원칙이다. 그러나 다수의 의사만 따르는 의사 결정은 정치 사상가 알렉시 토크빌이 지적한 것처럼 ‘다수의 폭정(tyranny of the majority)’을 초래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최저임금 과속 인상, 임대차3법 등 모든 정책을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였다. 또 다른 민주주의 원리는 바로 책임성의 원리다. 국민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집권 세력은 정책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국민들과 그들의 대표에게 정책에 관해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국회의 존재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이야말로 협상과 타협이라는 의회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을 되살려야 할 때다.



-대선과 지방선거 등이 치러지는 ‘선거의 해’를 맞아 후보마다 미래 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는 선심성 공약을 쏟아내고 있는데.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제시하는 기본소득은 필요한 사람이든 필요 없는 사람이든 무조건 나눠주겠다는 보편적 지급 방식이다. 이는 마치 질병이 있든 없든 모든 사람에게 먹을 약을 주겠다는 것으로 잘못된 발상이다. 보편적 복지국가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기는 하다. 다만 그 원칙은 보편적 ‘지급’이 아닌 보편적 ‘보장’에 맞춰져야 한다. 경제적·사회적 어려움으로 지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알맞은 복지를 제공하는 보편적 보장의 원칙에 근거해야 한다는 얘기다. 보편적 복지 국가를 실현하자면 취약 계층에 대한 소득 지원과 보육·돌봄 같은 사회 서비스를 강화해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교육·훈련 및 실업자 재취업 지원을 통해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는 과제도 중요하다.

-한국 경제의 미래 성장 동력을 키우기 위한 구체적 방안은 무엇인가.

△시스템 반도체, 미래 자동차, 바이오헬스, 탄소 중립 에너지, 인공지능(AI), 로봇 등이 미래 성장을 이끌 주요 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신기술을 개발하고 경쟁력 있는 제품을 생산하는 것은 기업의 역할이다. 지금처럼 정부가 주도하는 방식으로는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정부는 기업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인프라를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처럼 기업을 적대시하는 정책은 버려야 한다. 무엇보다 불필요한 규제를 과감하게 제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저출산 시대를 맞아 인구 전략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가.

△2020년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은 0.84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저출산 대응 전략은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첫째는 저출산의 원인이 되는 사회적 요인을 찾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집값 폭등, 출산과 육아의 어려움, 높은 교육비, 노동시장의 경직성, 가족 구조 변화 등이 저출산의 다양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러한 저출산 요인을 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로는 창의적 인재 육성을 통해 경제의 생산성을 높이고 저출산에 따른 노동인구 감소에 대응하는 것이다. 셋째는 자본과 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해외 생산 거점을 확충해 외국의 노동인구를 활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을 실현하기 위한 최대의 국가 과제는 과학기술 초격차 확보와 핵심 인재 육성이다.

-현재 여야 대선 후보들이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만한 역량을 가졌다고 보는가.

△아직 대선 후보들이 구체적인 정책을 본격적으로 발표하지 않은 상황이어서 좀 더 지켜봐야 할 문제다. 하지만 후보들이 세세하게 정책을 제시하고 미사여구로 포장한다고 해서 국정 관리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치 지도자라면 원칙과 철학, 그리고 과거에서 현재까지 보여준 일관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국민은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게 국정 운영 권한을 위임하는데 시시때때로 말을 바꾸는 사람에게 국가 권력을 믿고 맡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선거의 해를 맞아 포퓰리즘에서 벗어나기 위한 길은 무엇인가.

△다수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민주주의 선거에서 후보자는 항상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다수가 원하는 것과 국민 전체의 이익이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포퓰리즘에 함몰되지 않고 개인의 선호와 공동선을 조화시키려면 정당 정치가 효과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그러나 여야 정당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친문 강성 지지자들이 여당을 좌지우지하는 현상은 이미 일상화됐고 이런 상황에서는 의원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야당의 경우도 정당의 역할이 무의미해졌다. 여론조사로 당 대표나 대통령 후보를 뽑는 바람에 여러 부작용으로 인해 포퓰리즘에 휘둘리게 됐다. 대선 이후 포퓰리즘을 극복하기 위한 정당 정치 개혁이 시급하다.

-유권자들의 올바르고 현명한 선택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대한민국에 요구되는 시대 정신은 공정이라고 본다. 누가 과연 정직하고 공정한 사람인지를 잘 판단해서 선택해야 한다. 이번에 유권자의 선택이 우리나라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He is…

1963년 서울 출생으로 우신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인데 현재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풀브라이트 방문 학자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국제개발협력학회 회장과 유엔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조정관을 역임했다. 영국의 유명 학술지 ‘글로벌소셜폴리시(Global Social Policy)’ 공동편집위원장을 맡아 개발도상국의 민주화 및 경제·사회 발전 등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다. 최근에는 공화주의 관점에서 사회 갈등을 해결하는 정치 이론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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