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껏 외모 콤플렉스와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 10대, SNS 속 화려한 스타들은 그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는 한다. 그럴수록 SNS의 ‘좋아요’는 호감의 표시이자 인기의 척도가 되고, 우열을 가리는 도구가 된다. 방수인 감독은 SNS라는 그림자 속에 가려진 가상의 나를 그린 카카오TV ‘그림자 미녀’를 통해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한 사회적 현상에 강렬하게 화두를 던졌다.
지난달 29일 종영한 ‘그림자 미녀’는 학교에선 왕따지만 SNS에서는 화려한 스타 지니로 살아가는 여고생 애진(심달기)의 아슬아슬한 방과 후 이중생활을 그린 드라마다.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한 아흠 작가의 동명의 웹툰이 원작으로, 배우 심달기를 비롯해 그룹 프로미스나인 이나경, 골든차일드 최보민, 펜타곤 홍석과 배우 허정희, 백지혜 등이 출연했다.
영화 ‘달마야, 서울가자’ ‘왕의 남자’ 연출부를 거쳐 영화 ‘워싱 머신’, ‘덕구’ 감독으로 활약한 방수인 감독은 ‘그림자 미녀’를 통해 처음으로 미드폼(mid-form, 25분 내외의 드라마) 형식에 도전했다. 영화를 준비하다가 코로나19 때문에 작업이 무산됐고, 자연스러운 기회에 카카오TV와 작업 기회가 마련된 것이었다. 영화와 다르게 드라마는 20~40분 사이 안에서 기승전결을 배분을 해야 하는 구조라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는데, 다행히 웹툰이라는 절대적 중심이 있어 비교적 각색이 어렵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고민은 있었어요. 주 시청자 층이 점점 10~20대가 되고, 시스템이 변하면서 극장 선호도가 줄어들더라고요. 어찌 됐든 투자 상황이나 환경 자체가 달라지다 보니 뉴미디어 플랫폼으로 넘어가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 와중에 ‘그림자 미녀’ 같은 미드폼을 만나 많이 배워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됐죠.”
많은 드라마 중에 ‘그림자 미녀’를 연출하게 된 건 이유가 있다. 현시대의 사회적 문제, 시의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 감독은 한 기사를 보고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다. 미국에서 SNS를 이용하는 Z세대들의 자살률이 급증했다는 것. ‘좋아요’의 공포나 주위의 평가, 평판으로 인해 자살률이 급증한 것인데,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니리도 자살률이 높은 것을 보고 아이러니하다고 느꼈다. ‘좋아요’를 누르면서 공포스러운 피드백을 받는다니.
“어린 10대 친구들이 빠르게 올라오는 SNS 속에서 스트레스와 좌절감, 나와 자신을 비교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웹툰 ‘그림자 미녀’가 그런 주제와 공통점이 있어서 그 작품을 좋아하게 됐고요. 그런 주제성이 반영된 캐릭터의 성장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애진이 갖고 있는 내면의 공포를 초반에 표현하기 위해 화면 색감을 짙게 했고, 애진의 성장 과정 속에서 색깔이 점점 빠지게 되는데요. 그런 것들을 각색하면서 스태프나 배우들과 계속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웹툰 마지막 줄에 있는 말인데, ‘남에게 부러움을 사는 삶보다 남을 부러워하지 않는 삶이 가치 있다’는 메시지 속에서 이야기에 중점을 뒀어요. 방영 후에 댓글을 보는데 이런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우리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때 누군가에게 사랑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작품을 보고 알았다’는 글이었어요.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들을 잘 느껴줘서 감사하게 생각해요.”
작품은 다소 과장되고 강한 이미지가 부각된다. 애진의 고등학교 생활부터 사회생활까지 담긴 웹툰과는 다르게 20분이라는 짧은 형식으로 압축되면서 감정을 극대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반면 캐릭터에서 계속 놓치지 않은 것은 10대들이라는 것이었다. 방 감독은 10대들의 이야기와 감성을 알기 위해 직접 10대들을 만나서 인터뷰하고, 예전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그때가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것을 다시 체감했다.
“작업을 하면서 ‘이중성’이라는 것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배우들에게 디렉션을 줄 때 초반에 ‘행복한 장면이야’라고 한 뒤, 마지막에는 씁쓸한 감정이 드러나게 했죠. 애진은 학교에서는 왕따이지만 SNS에서는 여신이고, 하늘(허정희)은 부잣집 딸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가난한 친구잖아요. 호인(최보민)은 반장이자 모범생이지만 내면에는 추리 본능이 있는 캐릭터고요. 이렇게 캐릭터마다 시작과 끝이 다른 이중성, 계속 바뀌는 관계성 등의 이중성을 계속 가져가려고 신경 썼어요. 배우들도 한컷 한컷마다 감정의 통일성이 없기 때문에 감정 소모하는 부분에 힘들어 했고요.”
이런 복잡다단한 캐릭터를 그리기 위해 배우들과 성장 배경이나 성격에 대한 대화도 많이 나눴다. 그들의 경험을 캐릭터에 녹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대부분 배우들의 성장 과정과 캐릭터가 일치되는 게 거의 없었다. 특히 ‘그림자 미녀’는 캐릭터들의 말투나 표정 같은 것들을 극대화된 부분이 많아 너무 다른 삶을 살아온 그들에게는 어렵게 느껴질 것 같았다. 그 때문에 방 감독은 직접 경험했던 것이나 기사로 본 것들을 이야기해 주는 작업을 거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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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애진은 외모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SNS 속의 가상의 자신과의 괴리감에 빠지는 인물이다. 어렵고 무거운 주제인 만큼 애진 역을 연기할 배우가 중요했다. 방 감독은 넷플릭스 ‘페르소나-키스가 죄’에서 심달기를 처음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그는 “연기가 독특하고 자유스럽게 하는 배우여서 ‘저 친구와 한 번 작업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애진의 나이대를 생각했을 때 심달기 말고 다른 배우는 생각이 안 났다”며 싱크로율 높은 연기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실제 심달기의 모습은 애진과 달라요. 심달기는 솔직하고 적극적이고 밝은 친구거든요. 그래서 심달기가 힘들었던 점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심달기와 애진이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요. 애진은 겉으로 봤을 때는 나약한 친구이지만 내면은 단단한 외유내강이라, 어느 순간부터 계속 당하고만 있지 않아요. 그런 것들을 입체화는 작업을 많이 했어요.”
‘그림자 미녀’의 캐스팅 라인업이 눈에 띄는 것은 심달기를 제외한 주인공들이 모두 아이돌이라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거짓으로 지니 행세를 하고 다니는 두 얼굴을 가진 미진 역의 이나경은 오디션으로 발탁됐다. ‘미진 역이 꼭 아이돌이어야 한다’는 기준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방 감독은 이나경이 연기 경력이 없음에도 영리하고 감성이 좋아 선택하게 됐다고.
“실제로 이나경의 성격이 되게 털털해요. 오디션을 봤을 때 웃는 게 아기 같고 천사 같았는데, ‘저 얼굴에서 악녀로 탈바꿈을 하면 재밌겠다’ 싶었죠. 한 번은 모니터를 보여줬는데 ‘제가 이래요?’라고 하더라고요. ‘아무래도 네가 모르는 네 안에 이런 면이 있는 게 아닐까?’ 했는데 ‘저는 이렇지 않아요’라고 했죠. 후반쯤에는 ‘저도 몰랐는데 저한테 이런 얼굴이 있었네요’라고 놀라더라고요. 그렇게 미진과 이나경의 접점을 만들어 갔어요.”
최보민이 연기한 호인 역과 홍석이 맡은 진성 역 또한 쉬운 역할이 아니었다. 호인은 겉으로 보면 조용한 모범생이지만 지니의 비밀을 파헤치려는 이중적인 면모를 가졌고, 진성은 애진 앞에서만 구수한 사투리로 이야기하는 화려한 외모의 아이돌 연습생이다.
“최보민은 실제로는 엄청 긍정적이고 밝고 맑았어요. 호인과 반대로 순하고 정이 많은 친구죠. 최대한 많이 만나서 캐릭터 분석을 하고 표정 같은 것들을 같이 고민했는데, 기존에 맡았던 설레는 남동생 역할보다 새로운 역할에 도전하고 싶어 하더라고요. 이번에 작업하면서 우는 연기나, 먹는 연기도 처음이라고 하기도 했고요. 아마도 새로운 경험이지 않았을까요.”(웃음)
작품 초반을 책임졌던 홍석은 다소 어색한 사투리 연기로 시청자들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원작에서는 사투리를 쓰는 역할이 아니었지만 방 감독이 각색하면서 진성이의 이중성을 표현하기 위해 사투리 설정을 넣은 것이었다. 사투리 연기에 대해서 방 감독이 선택지를 줬고, 홍석은 과감하게 도전하는 것을 선택했다.
“홍석이가 아버지도 부산 출신이고 그런 사투리를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도전하고 싶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배우들의 자유도를 많이 존중하니까 응원해 줬어요. 그런데 초반 댓글에 홍석이 사투리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서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제 전작인 ‘덕구’ 때는 사투리 트레이너 선생님과 함께 작업했는데 이번에는 그런 여건이 되지 못했어요. 홍석이가 개인적으로 경상도 친구들과 통화하면서 정말 열심히 연습했죠. 열심히 한 노력이 잘 안 비춰진 건 제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영화배우들, 소위 말하는 연기파 배우들과 작업하면서 ‘이렇게 좋은 배우도 많은데 화제성 때문에 아이돌을 배우로 쓴다’는 선입견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이 배우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내가 편견이 있었구나’ 생각했어요. 배우로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캐릭터에 도전하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고 패기가 좋고 열정이 느껴져서 앞으로가 더 기대돼요.”
작품은 종영했지만 카카오TV를 비롯한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유입될 새로운 시청자들을 위해 방 감독은 ‘그림자 미녀’를 “나 자신이 힘들고 미워질 때 보는 드라마”라고 소개했다. 그는 웹툰을 보고 각색을 하면서 독백하듯 ‘애진아. 너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야. 거기에 좌절하지 말고 단단해지고 네가 정말 행복해졌으면 좋겠어’라고 응원하기도 했다며 시청자들도 애진의 아픔을 함께 들여다봐주길 바랐다.
“인플루언서와 10대들을 인터뷰하면서 놀랐던 것이 요즘 10대들은 거울을 안 보고 핸드폰 필터 모드로 얼굴을 본다고 하더라고요. 그 부분이 현실의 나를 싫어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장르적으로 오락이 아닌 서스펜스 스릴러로 한 것도 SNS 속 ‘좋아요’가 나한테도 공포로 다가왔기 때문이죠. 이런 이면을 봐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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