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한국일보 LA본사 부국장으로 골든 글로브 어워드를 주관하는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 회원인 하은선 엔터테인먼트 전문기자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본고장 할리우드에서 만난 스타들과 함께 하는 ‘하은선의 할리우드 리포트’를 온라인 연재합니다.
“사랑은 언제나 의미 있는 주제이고, 분열은 현 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하죠. 지금이 이 이야기를 꺼내야 할 가장 적절한 시기예요.”
스티븐 스필버그(75) 감독이 첫 뮤지컬 영화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선택한 이유다. 지난달 LA프리미어가 열린 할리우드의 엘 캐피탄 극장에서 스필버그 감독은 “코로나로 영화 제작이 지연되면서 얼마 전 타계한 스티븐 손드하임과 꽤 긴 시간 작업을 했다. 고인을 SS1, 내 자신을 SS2로 부를 정도로 격의 없이 지내며 함께 재해석한 영화를 드디어 선보이게 되어 흥분된다”고 밝혔다.
손드하임을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전설로 만든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할리우드 영화의 거장에게도 하나의 도전이다. 스필버그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즐겨 들은 음악, 많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뮤지컬 고전에 새 생명을 불어넣고 새로운 관객들과 공유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는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과 통찰력은 변함이 없다. 사회적 차별과 편협함을 뛰어넘으려는 사랑이 전제로 깔린 문화적 힘이 60년 넘게 관객들을 사로잡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링컨센터 완공을 앞두고 철거 작업이 한창인 뉴욕의 슬럼가를 따라가는 첫 장면부터 압도적인 비주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스필버그 감독은 “뉴욕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가능한 한 이야기의 배경이 된 실제 뉴욕의 거리에서 촬영하고 싶었고 두 라이벌 갱단들이 견뎌낸 시대적 맥락과 그 시절의 전경을 영화 속에 명확하게 담길 원했다”고 말했다. 19세기 푸에르토리코 출신이 다수 거주했던 샌후안 힐, 지금의 뉴욕 맨해튼 어퍼 웨스트 사이드 60가에서 72가로 이어지는 링컨 스퀘어에서 푸에르토리코 여성들의 희망을 노래하며 춤추는 ‘아메리카’ 장면은 압권이다.
스필버그 감독은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배우들을 캐스팅하기 위해 2018년 오디션 공모를 했다. 3만 명 이상이 데모 동영상을 보냈더라”고 놀라움을 표했다. 영화 속 ‘샤크파’는 푸에르토리코 후손이고 ‘제트파’는 유럽 출신의 백인들이다. 그는 원작의 리얼함을 살리고자 ‘샤크파’로 출연하는 배우들은 100% 라틴계를 기용했고 영어와 스페인어가 공존하는 뉴욕의 이민자 삶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 스페인어 대사에 일부러 영어 자막을 넣지 않았다.
90세의 명배우 리타 모레노를 출연시키고 싶어 원작에 없던 캐릭터 발렌티나를 탄생시켰다는 스필버그 감독은 “주·조연 배우 전원이 치열한 오디션 경쟁을 거친 춤과 노래 실력을 겸비한 신예들”이라고 소개했다. 제트파의 일원 토니역은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 안셀 엘고트가, 라이벌인 샤크파 리더의 여동생 마리아역은 이제 막 스무살이 된 레이첼 지글러가 맡았다. 사랑을 확인하는 발코니 장면에서 두 배우가 직접 부르는 ‘투나잇’는 화면과 목소리 모두 아름답다. 또, 잿빛 도시를 배회하는 ‘씬스틸러’ 마이크 파이스트는 원래 토니역으로 오디션에 응시했지만 감독과 작가, 제작진의 만장일치로 제트파 리더 리프역에 낙점된 뮤지컬 배우다.
스필버그가 재창조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그의 전작 ‘뮌헨’ ‘’링컨‘의 각본을 집필했던 토니 쿠슈너 작가가 상상력을 더하면서 러브 스토리의 결이 달라졌다. 두 갱단의 세력 다툼 속에 사랑에 빠진 토니와 마리아보다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편견 없는 사랑의 서사에 더 오래 머문다. 그래도 156분의 러닝타임 내내 구스타보 두다멜 LA필하모닉 음악감독이 지휘한 번스타인의 음악은 박진감이 넘친다. /하은선 미주한국일보 부국장, HFPA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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