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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달러숍서 사라지는 1달러 상품…美, 고물가에 민심 싸늘 [윤홍우의 워싱턴24시]

美, 소비자 물가상승률 40년래 최고

인플레 바로미터 기름값 4弗 육박할 듯

정치지형 다시짜는 중간선거 앞두고

공화당, 인플레 문제 집중부각 예고

의회권력 뺏기면 사실상 바이든 레임덕

親트럼프파 벌써부터 물밑 복귀 모금전

미국 버지니아주에 위치한 달러트리 매장. 미국의 대표적인 저가 숍인 달러트리가 지난 35년간 고수한 1달러 정책을 포기하고 올해부터 가격을 1.25달러로 인상하기로 했다. /사진=윤홍우 특파원




긴 연휴가 끝난 지난 4일 미국 워싱턴DC 인근에 위치한 달러트리 매장은 새해를 맞아 쇼핑에 나선 사람들로 북적였다. 부엌·욕실 용품을 비롯해 온갖 잡화를 파는 이곳은 거의 모든 제품을 1달러에 판다. 한국으로 치면 다이소 같은 곳이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 수많은 오프라인 매장들이 문을 닫았으나 이곳만큼은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을 지속해왔다.

미국 저가 숍의 상징과도 같은 이곳이 35년간 고수한 1달러 정책을 곧 포기한다고 지난해 말 선언했다. 인플레이션과 공급난 등에 백기를 들며 가격을 1.25달러로 올리기로 한 것이다. 이날 매장 안에서 장식품을 사던 테일러 씨는 “인플레는 모든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면서 “이곳에서 10~20달러씩 쇼핑하는 게 재미였는데 앞으로 예전처럼 자주 올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미국 버지니아주에 위치한 달러트리 매장에서 고객들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사진=윤홍우 특파원


달러의 값어치가 떨어지는 인플레가 미국인들의 삶 곳곳에 영향을 끼치며 미국 정치 권력의 판도까지 바꿀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임금이 올라도 물가를 따라잡지 못하는 경제에 대한 미국인들의 분노는 백악관과 의회를 향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근 40년 내 최고치인 6.8%를 기록했고 이에 앞서 취임 1년도 안 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40% 초반대로 추락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오는 11월 차기 대통령 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칠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하원 435석 전원과 상원 100석 중 34석, 39개 주의 주지사를 새로 뽑는다. 바이든을 지지했던 민심이 이탈하면서 블루 웨이브(민주당이 상·하원과 대선 장악)가 막을 내리고 레드 웨이브(공화당이 장악)가 시작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간선거는 현직 대통령의 무덤=비단 인플레 때문이 아니라도 대선 이후 2년 만에 치러지는 미국의 중간선거에서 현직 대통령들은 주로 우울한 성적표를 받았다.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시점에 선거가 치러지는 영향도 크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치러진 미국의 중간선거에서 현직 대통령이 속한 정당은 하원에서 평균 26석, 상원에서 평균 4석을 잃었다. 4년 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민주당에 뺏기고 상원을 가까스로 지켜낸 후 ‘승리 선언’을 한 것은 그만큼 중간선거가 어렵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상황은 그러나 인플레까지 겹쳐 절박해 보인다. 지난해 11월 치러진 주지사 선거는 이미 심상치 않은 미국의 민심을 드러냈다. 대선 당시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했던 ‘블루 스테이트(민주당 우세 지역구)’ 버지니아주에서 정치 신인인 공화당의 글렌 영킨 후보가 주지사 출신의 노련한 민주당 후보를 제치는 이변이 펼쳐졌다. 인플레로 인한 삶의 질 하락, 인종 교육 이슈 등을 집중 공략한 영킨의 선거 전략은 바이든을 지지했던 이들이 등을 돌리게 했다고 현지 언론들은 분석했다.

공화당은 여세를 몰아 이번 중간선거에서도 인플레 문제를 집중 부각할 방침이다. 로나 맥대니얼 공화당 전국위원회 위원장은 “39년 만에 최고로 치솟는 물가, 공급망 위기, 수조 달러의 무모한 지출, 가족에 대한 세금 인상으로 인해 바이든은 이미 미국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고 비판했다.



미국 버지니아주의 한 주유소 앞 패널에 기름값이 표시돼 있다. 갤런당 3.5달러에 육박하는 기름값은 2년 전의 2배 수준이다. /사진=윤홍우 특파원


◇기름값 4달러 등 변수…다급한 백악관=미국 정치 매체들은 각종 인플레 지표 중에서도 기름값이 중간선거에 끼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자동차가 필수적인 미국인들에게는 통상 ‘갤런당 4달러’가 심리적인 마지노선으로 여겨진다.

2012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재선 가도에 가장 큰 변수가 된 것도 당시 갤런당 4달러에 육박한 기름값이었다. 역대 미국 대선에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이란 혁명 등으로 인한 2차 오일쇼크로 재선에서 참패한 반면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1980년대 저유가 시대의 혜택을 톡톡히 누렸다.

CNN은 최근 유가 정보 업체인 가스버디의 예측을 활용해 올해 중순 미국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3.8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가스버디의 유가 분석 책임자인 패트릭 드한은 “상황에 따라 갤런당 4달러를 상회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기름값이 4달러에 다다를 경우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 입장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맞게 된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해 전략 비축유를 전격 방출하고 올해 첫 공식 일정으로 ‘밥상 물가 잡기’에 나선 것도 그만큼 인플레 문제가 선거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새해 첫날 백악관에서 미국 육류 시장을 장악한 대형 육류 업체들에 “시장을 왜곡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초강대국 미국의 대통령도 인플레 앞에서는 무력하다는 회의론이 미국 경제계에는 이미 팽배하다.

◇공화당의 승리…트럼프 복귀로 이어질까=현재 미국 하원은 총 435석(재적 434석) 가운데 민주당이 221석, 공화당이 213석을 갖고 있다. 공화당이 이번 선거에서 현재보다 5석만 늘리면 하원의 과반수를 차지할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상황은 절대적으로 공화당에 유리하다. 민주당의 ‘얼굴’인 바이든 대통령의 인기가 바닥을 치고 있고 지난해 미국 인구 센서스를 통해 텍사스나 플로리다 등 공화당 우세 지역의 하원 의석수가 늘었다. 상원은 판세가 다소 복잡하나 34석의 지역들 가운데 상당수가 지난 대선에서 양당 간 근소한 차이가 났던 곳이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상원만큼은 사수해야 하지만 공화당은 상원마저 장악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의회 권력이 공화당으로 넘어갈 경우 바이든 대통령의 경제·복지·에너지 정책 등은 줄줄이 암초에 부딪힐 수 있다. 중국이나 러시아를 향한 외교적 대응 역시 공화당이 입김이 거세질 수밖에 없다. 상·하원을 다 뺏기면 사실상 레임덕을 맞게 된다는 진단까지 나온다.

미국 정치권의 가장 큰 관심은 이 같은 상황을 등에 업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대선 무대에 오를지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친트럼프 단체들이 사실상 대선 모금 운동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이번 중간선거를 계기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킹 메이커’ 역할을 맡거나 직접 대선에 뛰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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