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 로즌블럼 미국 서던메소디스트대 콕스경영대학원 교수는 지난 1970년 시카고연방준비은행 이코노미스트로 시작해 부총재를 지냈고 2013년 댈러스연은 집행부총재를 끝으로 43년간의 연은 경력을 마무리한 통화정책 전문가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지역 연은의 시스템과 역사를 꿰고 있는 인물로 손꼽힌다.
한국에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전미실물경제협회(NABE) 회장을 지냈을 정도로 미국 경제 학계에서는 유명한 인물이다. 지금도 인플레이션을 비롯해 세계화가 미국 경제와 기업에 미치는 영향 등을 연구하고 있다.
로즌블럼 교수는 지난해 말 서울경제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그동안 연준이 물가 상승 문제의 본질을 잘못 판단했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2020년 3월 코로나19 확산이 시작됐을 때 연준의 정책 대응은 정확했다. 미국 경제는 경기 침체와 총수요 붕괴 가능성에 직면해 있었다”면서도 “하지만 이후 연준은 완화적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결합된 상황에서 공급이 제한되고 총수요는 급증하는 것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의 원인으로 공급 문제를 제기했지만 수요 부분을 간과했고 공급망 문제도 연준의 바람대로 시간이 흐르면서 쉽게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더구나 미 의회는 크고 작은 수백만 개 기업에 자금을 지원했고 1억 가구가 넘는 미국 가정에 수천 달러씩 지급했다. 연준은 제로금리와 무제한 양적완화(QE)로 돈 풀기에 나섰다.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직간접적인 요소가 많았던 것이다.
로즌블럼 교수는 “(코로나19 같은 상황에서는) 수요는 급증하지만 공급은 제한적으로 이뤄져 재화와 서비스·노동·자재 등의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며 “불행히도 연준은 인플레이션이 통화정책의 문제점이라는 점을 부인해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어떤 측정 도구를 쓰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지금은 5~8%대의 인플레이션이 나타나고 있다”며 “연준이 전형적인 미국 가구의 실제 체감도를 반영해 계산해본다면 물가 상승률이 8~10%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12일(현지 시간) 나올 미국의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대비 7.1%(블룸버그 전망치) 올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연준도 뒤늦게 물가 대응에 나섰다. 로즌블럼 교수도 이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로즌블럼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한 뒤인 5일 공개된 지난해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은 연준이 이르면 3월 기준금리 인상과 양적긴축(QT)을 동시에 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로즌블럼 교수는 “최근 연준이 인플레이션 문제에 훨씬 더 매파적으로 나오고 있다. 연준이 인플레이션이 ‘일시적(transitory)’이라는 표현을 삭제한 뒤인 올해와 내년에는 통화정책 전환이 이뤄질 것”이라면서도 “연준의 말과 정책 방향이 바뀌기 시작했지만 인플레이션을 낮추기에는 너무 느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나온 점도표를 근거로 연준이 금리를 3회 인상한다고 하더라도 말로만 긴축을 하는 것일 뿐 실질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통화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명목금리에서 인플레이션율을 뺀 실질금리”라며 “물가 상승률과 기대 인플레이션이 계속 높을 경우 실질금리는 마이너스 영역으로 더 깊이 떨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는 총수요를 자극해 인플레이션 압력을 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물가 상승률을 5%로만 잡아도 현재 실질금리는 -5% 정도가 된다. 금리를 3회 올리면 0.75%포인트, 월가의 예상대로 4회 인상한다고 해도 1%포인트만 더해지게 된다. 여전히 실질금리는 -4% 수준이다.
정치적 변수도 있다. 올 11월에는 중간선거가 있다. 현재 조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철군 문제와 인플레이션 대응 실패 등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미 경제 방송 CNBC가 지난해 12월 17~20일 유권자 1,89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44%로 취임 이후 가장 낮았다. 물가 같은 경제 문제가 주된 이유인데 그렇다고 금리를 대폭 올려 대응하면 대출이자 폭등으로 더 큰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
로즌블럼 교수는 “긴축 정책은 항상 어렵지만 선거가 가까워지면 특히 어려워진다”며 “이를 고려하면 나는 올해 연준이 과도하게 완화적 통화정책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며 이는 실제로 물가가 낮아지는 것을 보려면 내년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라고 전했다.
이는 연준이 인플레이션 파이터를 자처하면서 강하게 나오지만 최대한 긴축을 늦추려 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월가 내에서도 지난해 12월 FOMC 회의록에도 불구하고 연준의 속내로는 긴축을 하고 싶지 않을 것이라며 1월 FOMC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그는 또 미국의 고인플레이션이 장기간 지속될 경우 달러의 위상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우선 로즌블럼 교수는 “중앙은행 독립에 대한 많은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중앙은행이 정부가 국민과 기업에 세금을 부과해 조달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지출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며 “이는 특히 전쟁 기간에 유효하며 이번 코로나19 위기 때도 제로금리와 그에 따른 실질금리 마이너스, 국채 매입 등의 조치가 이뤄졌다”고 짚었다.
그는 이어 “미국은 선진국 중 인플레이션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로 엄청난 규모의 정부 적자를 어느 때보다 낮은 실질금리로 버텨왔다. 세계에서 가장 큰 채무자인 미 재무부가 높아지는 인플레이션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았다”며 “다만 이 같은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미지수”라고 분석했다.
로즌블럼 교수는 “미국의 물가 상승률이 가팔라 명목금리는 미국이 높더라도 실질금리는 다른 나라가 더 나은 경우가 많다”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상대적으로 달러 가치가 떨어지고 국내외 투자자들의 신뢰에 금이 갈 수 있다”고 봤다.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상이 훼손되기 시작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경우 기준물인 10년 만기 미 국채금리가 더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예측이다.
고용 시장에 관해서는 아직 추가 진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19 위기의 성격과 범위·규모 등을 고려할 때 지금의 노동시장 회복은 다른 위기 때와 비교하면 상당히 잘 진행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코로나19 이전과 견주면 고용이 더 늘어야 한다”고 말했다.
로즌블럼 교수는 “코로나19로 대규모 조기 퇴직이 발생했지만 일을 해 번 돈보다 정부에서 수당으로 받는 돈이 더 많아지면서 노동 참여율이 급격히 떨어졌다”며 “일부 근로자의 경우 임금 인상이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기도 한다”고 진단했다. 고용 시장도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여전히 노동자 중 상당수는 코로나19에 노출되는 위험이 일을 해 벌어들일 소득을 능가한다”며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확산으로 고용시장 회복은 생각보다 느리게 진행될 수 있다고 점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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