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신고자나 피해자·증인이 가해자의 위협을 피해 임시로 거주할 수 있도록 검찰이 도입한 ‘안전가옥’의 이용률이 수년째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복 범죄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한 가운데 이미 마련된 보호 장치도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검찰이 운영 중인 ‘범죄 신고자 보호시설(안전가옥)’은 2017년 이래 매년 이용자 수가 10명을 밑돌고 있다. 2020년과 지난해에는 2년 연속 이용자 수 ‘0명’을 기록했다. 최근 보복 범죄가 갈수록 늘어나는 것과 비교하면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수치다.
안전가옥은 살인·강도·마약 등 중대 범죄는 물론 가정폭력·아동학대·강제추행 등 보복 우려가 있는 범죄 신고자·피해자·증인 본인 또는 친족 등이 머물 수 있는 시설이다. 지난 2008년 대검찰청이 도입을 결정해 현재 서울중앙·부산·인천·수원지검에 총 4곳의 안전가옥을 두고 있다.
하지만 보복 범죄가 매년 급증하는 것과 달리 이를 예방하기 위한 안전가옥이 쓰임새를 찾지 못하면서 국민의 세금으로 임차료만 빠져나가고 있다. 대검에 따르면 검찰에 접수된 보복 범죄 건수는 2018년 381건에서 2019년 394건으로 늘었다. 이어 2020년 535건으로 급증한 뒤 지난해 615건을 기록했다. 검찰은 코로나19 확산의 여파로 안전가옥 이용률이 떨어졌다는 입장이지만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8년과 2019년 이용자 수도 2명과 4명에 그쳤다.
안전가옥이 방치된 가장 큰 원인은 검찰 수사 단계에서 피해자 보호 제도를 이용하기에는 늦은 감이 있다는 데 있다.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가 줄어 피해자 지원이 가장 시급한 초동수사 단계는 경찰이 대부분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서다.
경찰에 피해자 지원 업무가 쏠리면서 검찰의 안전가옥과 유사한 경찰의 ‘피해자 임시숙소’는 본예산이 부족해 다른 사업의 예산을 끌어다 운영하고 있다. 기관별로 피해자 지원 제도가 산재한 탓에 재정의 비효율성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안전가옥의 경우 예산을 집행하는 법무부 내에서도 주무 부서(인권국)와 지원 부서(검찰청)가 분리돼 체계적인 지원이나 정보 교류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또 시설이 주로 수도권에만 몰려 있어 지방에 거주하는 국민들은 이용에 불편이 뒤따른다.
이 때문에 관련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앞서 법무검찰개혁위원회는 2020년 경찰 단계에서의 범죄 피해자 직접 지원 비중을 대폭 확대하고 장기적으로는 검찰·경찰·여성가족부 등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는 피해자 지원 조직을 ‘범죄피해자지원공단’과 같은 공공기관으로 통합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김영수 치안정책연구소 치안정책연구부장은 “범죄 피해자에 대한 지원이 기형적으로 이뤄져온 탓에 부처별로 예산이 남거나 모자라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며 “국회 차원에서 전담 기구를 설치하거나 부처별 예산 배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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