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외쳐온 문재인 정부가 공직자와 민간인을 대상으로 마구잡이로 통신 조회를 했다. 서해에서 북한군에게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유족의 법률 대리인 김기윤 변호사는 11일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 4곳으로부터 지난해 2월부터 11월까지 네 차례 통신 자료를 조회당했다”고 말했다.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는 일도 감시를 당하는 세상이 됐다. 검찰은 김 변호사 외에도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팬카페 주부 회원,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등 다수의 민간인 통신 자료를 뒤졌다.
감사원은 지난해 10월 최재해 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청와대 비서관 감사위원 내정설’ 의혹을 야당 의원이 제기하자 청문회 직후 간부 31명 전원의 휴대폰 통화 내역을 조회했다. 정부 기관의 감사를 지휘하는 간부의 통화 내역을 뒤진 것은 감사 의지를 위축시킬 수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도 야당 정치인과 언론인 및 가족 등 330여 명에 대한 무더기 통신 조회로 파문을 일으켰다. 특히 한 언론사 편집국장을 비롯한 기자 70여 명의 소셜미디어 단체 대화방까지 들여다봤다. 수사기관이 언론사의 편집 과정을 들여다본 일은 과거 독재 정권 때도 없었다.
문재인 정부는 불리한 보도가 나올 때마다 공무원들의 휴대폰을 압수해 뒤졌다. 이는 헌법상 사생활의 비밀·자유 침해는 물론 형법상 직권남용의 소지가 크다. 통신 조회의 근거인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3항은 헌법상 사전 검열 금지와 적법 절차 원칙에 위배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또 통신 비밀 등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해 과잉 금지 원칙에도 어긋난다. “우리에게는 사찰 유전자(DNA)가 없다(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고 하더니 정반대로 ‘감시 공화국’을 만들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정부는 수사와 직접 관련 없는 사찰을 즉각 중단하고 대선 후보들은 통신 감찰 근절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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