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시바기계가 1987년 선박 프로펠러 제작용 기계를 소련에 수출하다 적발됐다. 이 기계가 대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COCOM·코콤)의 통제 품목에 해당돼 수출하려면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도 이를 어겼기 때문이다. 소련은 이 기계를 활용해 원자력잠수함의 소음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미국은 도시바그룹 전체의 대미 수출을 금지했고 나카소네 야스히로 당시 일본 총리는 미국에 공개 사과했다.
코콤은 1949년 미국 등 15개 서방국들이 결성한 수출 통제 기구로 공산국가들에 대한 서방국들의 군사 우위 확보를 위해 설립됐다. 코콤 회원국들은 군사 목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있는 제품을 선정해 공산권 수출 금지 품목 명단을 작성했다. 코콤은 데탕트 시대를 거치면서 유명무실해졌다가 1980년대 미국에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강화됐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들어 수출 지역을 공산권으로 확대하고 품목도 반도체·컴퓨터 등 첨단 제품으로 바꿔가면서 코콤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냉전 체제가 무너지면서 코콤의 변화도 불가피해졌다. 코콤은 1994년 해체돼 1996년 바세나르협정으로 대체됐다. 바세나르협정은 이란·북한 등 세계 평화에 위협이 될 만한 나라에 대한 무기·기술 수출 금지를 목적으로 체결됐다. 바세나르협정에는 기존 서방국에 더해 냉전 시대의 공산권 군사 동맹 기구인 바르샤바조약기구 국가들도 참여했으며 우리나라도 협정국으로 이름을 올렸다. 2019년 일본이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했을 때 우리 정부는 이 조치가 바세나르협정의 취지에 어긋난다며 부당성을 알렸다. 선량한 민간 거래를 저해하지 않아야 하고 수출 물자가 무기로 쓰인다는 합리적 의심이 있을 때 수출을 통제한다는 바세나르협정의 기본 지침에 위배된다고 본 것이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미국과 일본이 중국을 겨냥해 첨단 기술 수출을 규제하는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현대판 코콤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2018년 미중 무역 분쟁 이후 한국의 대중국 수입 의존도가 더 높아지고 있다. 우리가 중국의 주변국 길들이기에 당하지 않으려면 가치 동맹을 중시하면서 중국 의존도를 줄여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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