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最古)의 골프대회 디 오픈(브리티시 오픈)이 시작된 곳은 프레스트윅 골프클럽이다. 스코틀랜드 최대 도시 글래스고에서 남쪽으로 약 50㎞ 떨어진 작은 도시 프레스트윅에 있다. 이 코스의 설계자가 골프 역사의 중요 인물인 올드 톰 모리스(1821~1908년)다. 이름이 같은 부자(父子)를 구별하기 위해 아버지는 ‘올드 톰’, 아들은 ‘영 톰’이라 부른다. 올드 톰은 프로 골퍼이자 클럽 제작자, 코스 관리자, 코스 설계가 등으로 활동했는데 그가 만든 첫 번째 코스가 프레스트윅이다.
올드 톰은 14세 때부터 앨런 로버트슨(1815~1851년) 밑에서 클럽과 볼 제작 견습생으로 일했다. 로버트슨은 최초의 프로 골퍼이자 죽을 때까지 내기 골프에서 진 적이 없는 ‘무적의 골퍼’이기도 했다.
당시에는 페더리 볼을 사용했는데 무척 비쌌다. 말이나 소 가죽 안에 오리나 거위 털을 가득 채웠는데 공정이 힘들어 숙련된 작업자도 하루에 서너 개만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1848년 구타 나무 진액으로 만드는 구타페르카 볼이 탄생했다. 제작이 쉽고 저렴하면서 페더리 볼보다 더 멀리 날아가고 내구성도 좋았다. 구타페르카 볼의 출현은 로버트슨의 비즈니스에 커다란 위협이 됐다. 그러던 1851년의 어느 날 올드 톰이 구타페르카 볼로 라운드를 하는 것을 본 로버트슨은 화가 나서 올드 톰을 해고해 버렸다.
동부 해안 세인트앤드루스에서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서른 살의 올드 톰에게 손짓을 보낸 건 서부 해안 프레스트윅의 골퍼들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57명의 열성적인 골퍼들이 ‘레드 라이언 인(Red Lion Inn)’에서 정기적인 모임을 가졌는데 자신들만의 골프 코스를 가져야겠다고 결정한 후 올드 톰을 코스 관리자 겸 클럽·볼 제작자로 고용했다.
젊고 아이디어가 번뜩이던 올드 톰은 자신의 첫 번째 작품에 여러 파격을 접목했다. 대표적인 게 1번 홀이다. 지금 기준으로도 획기적인 파6 홀(578야드)로 만들었다. 그의 아들 영 톰이 1870년 디 오픈 때 이 홀에서 골프 역사상 최초의 앨버트로스(기준 타수보다 3타 적게 홀아웃)를 기록했다. 그린이 보이지 않는 블라인드 홀도 다수 선보였다. 모호성을 통해 상상력을 극대화하도록 한 것이다. 철도 침목을 벙커 벽 지지대로 사용하는 ‘침목 벙커’도 올드 톰부터 시작됐다.
디 오픈이 탄생한 것은 1860년이다. 그 전해에 당대 최강자 로버트슨이 죽자 ‘그렇다면 이제 최고의 골퍼는 누구냐’는 의문이 생겼다. 프레스트윅이 ‘챔피언 벨트’를 만들고 대회를 개최했다. 당시 프레스트윅은 12홀이었다. 하루에 3라운드를 도는 36홀 경기로 우승자를 가렸다. 우승은 머설버러에서 온 윌리 파크 시니어가 차지했다. 올드 톰은 2타 차로 준우승했지만 이후 2회와 3회 대회를 연거푸 제패했다. 4회는 파크, 5회 대회에서는 다시 올드 톰이 정상에 올랐다. 디 오픈에서 4회씩 우승한 둘은 평생 라이벌로 지냈다.
1872년까지 디 오픈은 프레스트윅에서만 열렸다. 이후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와 머설버러 등에서도 개최되기 시작했다. 프레스트윅은 1925년까지 디 오픈 순회 코스로 남아 있었지만 좁은 부지 문제 때문에 이후 제외됐다. 올드 톰은 ‘디 오픈의 고향’ 프레스트윅을 시작으로 로열 노스 데번, 라힌치, 뮤어필드 등 영국 전역에 약 80개 코스를 디자인했고 후대의 많은 설계가들이 그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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