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인류 최고의 문화유산인 피라미드 등 찬란한 이집트 고대 문명이나 전 세계 해상 물동량의 12%가 지나는 수에즈운하를 가장 먼저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일부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시나이산과 홍해의 기적, 성가정 피난지 등 종교적 성지를 꼽을지도 모른다. 샤름 엘셰이크와 후르가다 등 홍해의 휴양지는 세계인의 다이빙 성지이자 여행지로 사랑 받고 있다.
우리와 역사적 인연도 있다. 이집트도 식민 통치에 시달리다 독립을 쟁취한 유사한 역사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도인 카이로는 우리의 독립을 세계 만방에 최초로 공언한 역사적인 ‘카이로선언(1943년)’이 발표된 곳이기도 하다. 어른을 공경하고 가족을 중시하는 문화 등 정서적 유사점도 상당히 많다.
그래서인지 이집트는 아프리카·중동 지역 내에서도 한류가 활짝 꽃핀 곳 중 하나다. 현재 100여 개의 자발적 한류 팬클럽이 구성돼 있고 회원 수가 40여만 명에 달한다. ‘오징어게임’ ‘지옥’ 등 우리 드라마가 최근 이집트 넷플릭스 1위를 차지하며 특히 젊은 층 사이에서 한국 대중문화 인기가 광범위하게 확산하고 있다.
이집트는 인구 1억 300만 명으로 아랍권 최대 인구 대국(60%가 30세 이하)이며 연간 인구증가율이 2%에 달해 해마다 약 200만 명씩 인구가 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도 3%가 넘는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국가라는 점에서 이곳에서 불붙은 한국 문화와 한류에 대한 열기는 예사롭지 않다. 2005년 아프리카·중동 지역 최초로 최고 명문 아인샴스대에 정식 한국어학과가 신설된 이후 아스완대(2016년)에도 한국어학과가 생겼으며, 세종학당의 수업 지원자가 매년 폭증해 올해는 3,500명을 웃돌고 있다. 30여 개가 넘는 우리 기업이 이집트에 진출해 있고 삼성·LG 등이 현지 공장에서 생산해 주변국으로 수출하는 전자제품이 이집트 전체 전자제품 수출의 약 90%를 차지하고 있다. 카이로 시내에서는 한국산 휴대폰을 들고, 한국산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경제 분야에서도 한류는 이미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오는 19~21일에 2박 3일 일정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이집트를 방문한다. 우리 정상으로서는 2006년 이후 16년 만에 이뤄지는 이집트 방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그간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4강 외교를 근간으로 신남방·신북방 정책으로 대변되는 외교 다변화를 위해 매진해왔다. 이번 중동 3개국 순방, 특히 아프리카 첫 순방국인 이집트 방문은 지난 5년간의 외교 다변화 노력을 결산함과 동시에 오대양·육대주 해외 순방을 ‘완성’하는 의미도 있다.
교통 인프라, 담수화, 전기자동차, 그린수소, 우주, 해양, 원전 등. 이들은 어느 선진국의 협력 요청 사항이 아니라 올해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7) 주최국인 이집트가 한국에 기대하고 있는 협력 목록이다. 이렇듯 현재 이집트는 급속한 산업 구조 재편을 추진하고 있으며 한국은 다른 나라들보다 한 발 앞서 이집트와 선제적 협력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방문은 2016년 압델 파타 알시시 이집트 대통령 방한 시 합의된 포괄적협력동반자관계의 제반 협력 사항을 점검하고, 미래·그린 분야에서 한 단계 더 높고 깊은 협력 관계로 나아가는 뜻깊은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100주년, 투탕카멘묘 발굴 100주년 및 상형문자 해독 200주년을 기념하는 대이집트 박물관 개관, COP27 개최 및 신행정수도 이전 등 2022년은 이집트에 특별한 해다. 카이로 총영사관 설치 60주년이라는 점에서 양국 관계 측면에서도 올해는 각별하다.
이런 이집트에 새해 첫달 한국의 대통령이 공식 방문한다. 지난 2020년 3월 국내 코로나19 상황으로 마지막 순간에 연기됐던 문재인 대통령의 이집트 방문 약속을 지키는 일이기도 있다. 카이로 나일강에 쏟아지는 겨울 햇볕이 양국 관계에도 따뜻이 비추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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