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 수십 명을 유인해 성매매를 시킨 혐의로 수감됐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미국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의 피해자들은 그가 과거 자신들을 꼬드겨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차남인 앤드류(63) 왕자와 성관계를 하게 했다고 폭로했다. 피해자 중 한 명인 버지니아 로버츠 주프레(39)는 지난해 8월 뉴욕연방법원에 앤드류 왕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앤드류 왕자는 재판을 피하기 위해 소송 기각 요청을 했지만 미국 법원은 거부했다. 12일(현지시간) 루이스 캐플란 미국 뉴욕남부지방판사는 왕자가 재판에서 원고가 제기한 혐의를 부정할 수는 있겠지만 재판 기각을 검토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판결했다. 이에 영국 왕실 최악의 성추문 의혹이 공개재판으로 대중에 실시간으로 중계될 가능성이 커졌다.
세 아이의 엄마인 주프레는 BBC 파노라마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17세였을 때 엡스타인에게 인신매매되어 앤드류 왕자와 런던과 뉴욕, 카리브해의 섬에서 강제로 3차례의 성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앤드류가 당시 자신의 나이와 성매매 피해자인 사실을 알고도 성관계를 강요했다고 말했다. 주프레는 고소장에서 “앤드류 왕자는 미성년자였을 때 원고를 성폭행하여 의도적으로 구타를 저질렀으며, 동의 없이 여러 번 만졌다”라며 “앤드류는 엡스타인의 성매매 알선에 대해 무지한 척하고 희생자에 대한 동정심을 표하지도, 수사에 협조하지도 않았다”라고 전했다. 그는 A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앤드류 왕자가 나에게 한 일에 대해 책임을 묻고 있다. 책임져야 할 시간은 이미 오래 지났지만, 그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으며 아무리 힘이 없고 약한 사람이라도 법의 보호를 박탈당할 수 없다”라고 소송 이유를 밝혔다.
한편 앤드류 왕자 측은 주프레가 더이상 미국에 거주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소송을 막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앤드류 왕자는 BBC 뉴스나이트와의 인터뷰에서 “그런 기억이 없다”고 혐의를 부인했으며 피해 여성이 증거물로 제시한 사진에 대해서는 조작설을 주장했다.
앞서 이달 초 앤드류 왕자 측은 주프레가 엡스타인과 맺은 비밀 합의를 위반한 소송이라며 기각을 요청한 바 있다. 변호인단은 “주프레가 엡스타인의 성적 학대 희생자일 수 있다”면서도 그가 2009년 학대 피해를 일절 주장하지 않는 조건으로 엡스타인에게 50만 달러를 받은 사실을 강조했다. 캐플란 판사는 판결문에서 “2009년 합의가 앤드류 왕자에게 (소송 등을 피하는) 혜택을 주도록 명확하고 모호하지 않게 입증한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주프레의 주장은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애매한 것’도, ‘모호한 것’도 아니다”라며 “그는 특정 상황, 식별 가능한 세 곳의 장소에서 개별적인 성학대 사건이 발생했다고 주장한다”고 설명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13일 성명에서 “여왕의 승인과 동의에 따라 앤드류 왕자의 군 직함과 왕실 후원자 자격 등이 여왕에게 반환됐다”고 전했다. 왕실은 “앤드류 왕자는 민간인으로서 재판을 받게 된다”고 밝혔다. 왕실 관계자는 또 앤드류 왕자가 ‘전하’라는 호칭도 사용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고 BBC 등이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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