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동안 사용되며 상품적 가치와 브랜드 네임을 인정받은 고급품. 한 사전에 실린 ‘명품(名品)’의 정의다. 해외 유명 브랜드나 호화품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 말이 됐지만 본디 오랜 기간, 가치, 인정, 고급(고품격)에 방점이 찍힌 단어다.
명품의 사전적 정의를 우리나라 골프장에 대입할 때 안양CC를 첫손에 꼽는다고 해서 이의를 제기할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경기도 안양CC는 54년 전인 지난 1968년 개장했다. 한국전쟁 이후 건설된 일곱 번째 골프장이다. 1954년 재건된 서울(당시 고양군 군자리)을 비롯해 부산·한양·제주·태능·뉴코리아만이 그보다 일찍 건설됐다. 시간 속에 쌓인 가치와 품격에다 폐쇄적 운영에 따른 신비감이 더해지면서 명문으로 인정받고 있다.
안양은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의 뜻에 따라 조성됐다. “골프장에서도 일본과 서구의 명문들과 견줄 곳을 만들겠다”는 세계 일류의 의지가 출발점이었다. 이 회장의 애정과 손길은 골프장을 빈틈 없이 뒤덮고 있는 희귀종을 포함한 다양한 수목과 화초에 그대로 남아 있다. 우리 기후에 맞는 잔디 품종인 ‘안양 중지’도 그때 개발됐다.
일본인 미야자와 초헤이가 처음 설계한 코스는 1997년 대대적인 개조를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전 세계 270여 개 코스의 작업을 한 미국의 디자이너 로버트 트렌트 존스(RTJ) 주니어가 초창기의 정갈한 정원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도전적이고 전략적인 코스로 재탄생시켰다. 두 개씩이던 그린을 원(1) 그린으로 바꾸고 4번부터 10·13·14·15번 홀로 이어지는 개울을 만들어 난도를 높였다. 그 이후 2012년 한 차례 더 휴장에 들어가 배수를 개선하고 난도 조정을 위해 일부 그린의 넓이를 줄였다.
안양은 역사나 모기업의 이름에 압도돼 코스 자체의 우수함이 가려지는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무난해 보이지만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어렵게 느껴지는 매우 전략적인 코스다. 페어웨이 한가운데를 갈랐다고 해서 무조건 그린 공략이 쉬워지지는 않는다. 휘어진 형태, 장해물과 핀의 위치 등에 따라 티샷 방향을 결정해야 기회를 잡을 수 있는 홀이 많다는 의미다. 좌우로 삐끗하면 터줏대감들인 우람한 나무 사이에서 빠져 나오기 급급한 상황을 맞기 십상이다. 빠르고 굴곡이 큰 그린은 마스터스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과 자주 비교된다. 완벽한 관리도 빼놓을 수 없다.
13번(파3)은 이 회장이 가장 아낀 것으로 알려진 대표 홀이다. 티잉 구역에서 내려다보면 잘 가꿔진 조경과 연못이 꿈 속 정원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연못 좌우 갈대숲에는 각종 조류들이 서식하고 5~9월에는 홀 전체에 각종 장미가 만발한다.
홀마다 특징을 나타내는 나무를 심은 것도 오거스타와 닮았다. 이 덕분에 코스가 계절마다 달리 보이는데 2번 홀(파4)은 왕벚나무, 11번 홀(파4)은 낙락장송이 군락을 이룬다. 6번 홀(파5)의 주인공은 연꽃이다. 7~8월 티잉 구역에서 200야드 지점까지 펼쳐진 연못 가득 연꽃이 피면 황홀경 속 티샷을 경험할 수 있다.
클럽하우스는 2012년 두 번째 리모델링 때 허물고 다시 지었다. 지금도 내부에는 이 회장의 ‘무한추구(無限追球)’ 친필 액자가 걸려 있다. 구할 구(求) 대신 쓴 공 구(球)자가 눈길을 끈다. 무한 탐구와 무한 정진을 강조했던 골프 애호가의 위트가 엿보인다. ‘무한추구’는 늘 새로운 각오로 노력한다는 의미로 ‘지성통천(至誠通天)’과 함께 안양CC의 철학이 됐다.
◇서울경제 선정 ‘2021 한국 10대 골프장’
△핀크스(대상) △드비치(이하 가나다순) △베어크리크 △설해원 △안양 △우정힐스 △잭니클라우스 △클럽나인브릿지 △파인비치 △휘슬링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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