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2021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3.9%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벗어난 후 연간 기준 가장 높다. 사상 초유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발발로 수년 동안은 극복이 어려울 것으로 보였던 2020년 초로 돌아가보면 상황은 좀 더 극적이다. 2021년 GDP는 사상 처음 2,050조 원을 돌파할 것이 유력해 보인다. 실업률은 이미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을 뿐더러 월별 실업률에서는 지난해 하반기 2%대를 4개월 연속 기록하기도 했다. 약점으로 지적돼온 청년 실업률은 2012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 7.8%로 개선됐다.
한편 현재까지 6,700만 명의 확진자, 90만 명에 육박하는 사망자가 발생하며 팬데믹을 온몸으로 부딪혀온 미국은 더욱 드라마틱하다. 코로나19 발발 초반 많은 전문가는 2022년 미국의 실업률이 여전히 6% 이상에 머물 것을 우려했다. 그러나 이미 지난해 미국은 3년 전 호황의 절정기에 인접했던 실업률 3.9%를 기록했다. 이는 위기 발발 직후 2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보여준 성과다.
이러한 놀라운 성과에는 몇 가지 중요한 배경이 있었고, 결과적으로 몇 가지 중요한 희생을 낳았다.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국민들의 치열한 노력과 희생, 보건·의료 분야를 필두로 한 전방위적인 기술 혁신, 산업구조의 변화 등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며 전례 없는 위기 극복을 가능하게 했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부문이 있다. 바로 공격적인 통화정책과 수요를 실질적으로 지탱한 정부의 재정정책이다.
한국은행의 경우 역사상 가장 낮은 0.5%로 금리 인하를 단행했고 금융 중개 지원 대출, 통화스와프, 국고채 매입 등을 통해 75조 원 규모의 유동성 공급을 진행했다. 결과적으로 한은의 자산은 현재 580조 원을 넘어선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자산 역시 공격적인 통화정책 속에 9조 달러에 육박하게 됐다. 트럼프 정부에서 약 4조 달러, 바이든 정부에서 1조 8,000억 달러의 코로나19 관련 긴급 확장 재정정책이 진행됐거나 진행하고 있다.
놀라운 성과의 이면에서 이제 모두가 주목하는 인플레이션이 과제로 등장한다. 미국은 최근 12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대비 7%를 기록하며 40년래 최고치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2021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5%를 기록, 2011년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12월 급격히 스탠스를 바꾼 연준은 올해 세 차례에 걸친 금리 인상과 양적 축소를 예고했고 한은은 이달 금리 인상을 단행해 코로나19 위기 이전의 기준금리 1.25%로 복귀했다. 델타에 이어 오미크론까지 반복적인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은 공급망 문제 해결을 계속 지연시키고 있고 최근 우크라이나 이슈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수시로 등장하며 유가는 재차 팬데믹 이후 최고점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공짜 점심은 없다고 했던가. 이제 남겨진 과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반대로 또 무엇인가의 희생이 따를 수 있다. 인플레이션을 강하게 해결하고자 한다면 성장을 포기해야 할 수 있다. 상당한 성장을 포기하는 과정은 자칫 취약 계층의 고통을 더 가중시킬 수 있고 증시를 비롯한 투자 시장의 시계를 계속 불투명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다시 진지하게 생각하고 물어봐야 한다. 지금의 인플레이션 이슈가 2020년 이후 전개된 놀라운 회복 과정을 포기할 만큼 중대하고 심각한 상황인지, 앞으로의 기회를 포기할 만큼 해결해야 할 중대한 문제가 됐는지 말이다. 연준의 스탠스는 바뀌었지만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던 그 인내심의 깊은 뜻은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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