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함께 만들고 있는 우주 망원경 ‘스피어(SPHERE)x’가 예정대로 발사되고 작동한다면 약 10억 개 정도의 천체(은하)에 대한 영상과 분광 데이터를 얻을 수 있습니다. 2027년에는 전(全) 하늘의 천체를 거리별로 시각화한 ‘입체 우주 지도’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나사 등과 ‘전천' 적외선 영상 분광 탐사를 위한 우주 망원경 ‘스피어x’ 공동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천문연구원 정웅섭(사진) 우주과학본부 우주천문그룹장은 19일 대전 연구실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여기서 얻은 영상·분광 데이터는 전 세계 천문학자들과 공유하게 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정 그룹장이 이끄는 천문연 연구팀은 캘리포니아공과대(Caltech·주관기관), 나사 제트추진연구소, 미국 볼에어로스페이스등과 함께 나사에 스피어x를 제안해 2019년 공동 개발팀으로 최종 선정됐다. 스피어x는 넓은 영역을 동시에 관측할 수 있는 영상 관측과 개별 천체에서 나오는 파장의 변화를 측정하는 ‘분광 관측’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망원경이다. 제한된 하늘 영역이 아니라 전체 하늘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특징으로 천문연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기술이기도 하다.
우주 망원경 하면 떠오르는 ‘허블’과는 개념이 다르다. 허블이 ‘깊고 정밀하게’를 추구한다면 스피어x는 ‘넓고 다양하게’ 탐사한다. 정 그룹장은 “허블이 하나의 천체, 또는 특정 구역을 심도 깊게 관측하는 고성능의 망원경인데 반해 스피어x는 전 하늘을 스캔해 각 천체의 위치를 파악하고 기본적인 정보를 담아내는 것”이라며 “스피어x가 기본 자료를 제공하면 천문학자들이 허블을 활용해 좀 더 심도 있는 연구를 진행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음식으로 말하면 스피어x는 초벌구이, 허블을 완성된 메인 요리라는 것이다.
스피어x는 대략 6개월에 한 번씩 모두 4번 전체 하늘을 관측하게 된다. 관측 대상은 약 80억 광년 떨어진 천체를 포함 대략 10억 개 정도다. 2024년 발사 이후 2년 내지 2년 반 정도가 지나면 지금까지 한 번도 얻지 못했던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확보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는 이를 통해 우주 지도를 만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그는 “예전에 우주 지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적외선을 이용해 거리 개념까지 부여한 3차원 지도를 만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2027년이면 결과를 공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피어x는 한국 천문 기술 발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게 그의 예상이다. 우주의 탄생과 같은 거대 구조 파악, 은하의 생성과 진화, 물이나 이산화탄소 존재 유무를 통한 타 행성에서의 생명체 존재 가능성에 대한 연구 등에서 우리가 앞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는 것이다. 정 그룹장은 “우주 망원경을 직접 운영하면서 거기서 얻는 데이터를 공개하기 전에 먼저 주요 연구에 활용할 수 있다”며 “이미 사전 연구를 준비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관련 논문을 내는 등 성과를 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목할 점은 나사가 보유한 첨단 기술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 한국의 우주 망원경 기술은 미국, 일본에 비해 적어도 5년 이상 뒤져 있다는 게 객관적인 평가다. 나사와의 공동 개발은 이러한 격차를 줄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는 “우리가 그동안 차폐막과 같은 냉각기술, 위성체 정밀제어장치, 적외선 센터 구동 기술, 데이터 전송 기술 등과 같은 핵심 기술에 접근할 수 없었다”며 “이번 공동 개발로 핵심 기술 공유가 가능해졌고 앞으로 우리가 우주 망원경을 개발하는데 참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정 그룹장은 정부에 대해 “기초 과학에 대한 큰 그림을 보여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우주 개발과 관련한 지속적인 투자와 인력 양성에 힘쓰면 과학 기술 뿐 아니라 일반 산업 기술도 함께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주 관측과 개발에 사용되는 하이엔드 기술들을 개발하다 보면 관련 기술들도 따라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상업적으로 연결하게 되면 우리 일상생활에 적용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