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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불신 디스카운트

■김경미 증권부 차장


‘신뢰 자본’이라는 말이 있다. 정치경제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트러스트(1995)’라는 저서에서 언급했는데 신뢰 기반이 없는 사회일수록 그만큼 내야 할 비용이 크다는 의미다. 복잡하게 들리지만 사실은 아주 쉬운 얘기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우리 아이들을 항상 잘 돌봐주리라 믿는다면 폐쇄회로(CC)TV를 설치할 이유가 없다. 또 집주인이 제때 전세 보증금을 돌려줄 것으로 믿는다면 굳이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괜찮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시간과 비용을 들여 CCTV를 설치하고 보험을 들어야 한다. 예상치 못한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서는 돈과 시간을 들여 대책을 마련해둬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서로 믿지 못해 치르게 되는 비용이 ‘불신(不信) 비용’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말이 있다. 한국 증시가 다른 선진국 증시에 비해 유독 저평가를 받는다는 의미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기업들이 반도체·자동차 등 경기 민감주로 구성돼 수출 경기 등에 따라 실적이 들쭉날쭉하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글로벌 기업 대비 유독 인색한 배당 성향을 이유로 들기도 한다. 기자는 최근 한국 증시에 일어난 각종 사건·사고를 보면서 국내 상장사들의 신뢰 자본이 아주 낮다는 점도 하나의 원인으로 넣고 싶어졌다. 툭하면 주주들을 배신하는 기업들에 대한 ‘불신 디스카운트(할인)’가 작용하는 듯 보인다는 말이다.

예컨대 카카오페이의 ‘주식 먹튀’ 같은 사건을 보면 주식 투자가 두려워진다. ‘누구에게나 이로운 금융’이라는 기업 철학을 강조하던 대표이사가 상장 한 달 만에 경영진 7명과 함께 900억 원어치의 주식을 한꺼번에 팔아치워 자사 주가를 끌어내릴 줄 생각지도 못했다. 연초 증시를 들썩이게 했던 오스템임플란트 횡령 사건도 충격적이다. 재무팀장 한 명에게 1,800억 원이 넘는 횡령 범죄의 피해를 입고도 수개월간 몰랐다면 규모가 더 작은 코스닥 상장사들의 내부 통제를 어떻게 믿고 투자하란 말인가. 알짜 사업부를 쪼개 새 회사를 만들어 재상장해 모회사의 가치를 떨어뜨린다거나 거창한 계획서를 내밀었던 신약이 결국 미심쩍은 임상 실패로 끝나는 일 등은 너무 자주 일어나 뒤통수가 얼얼할 정도다.

혹자는 원래 주식 투자란 ‘하이리스크 하이리턴(고위험 고수익)’을 추구하는 위험 자산이라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최근 한국 증시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사고들은 건실한 경영자가 우연히 맞닥뜨린 불행이라기보다 주주를 무시하는 경영진·대주주의 무사안일함이 빚어낸 일종의 배임에 가깝다. 이런 사건들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한국 기업을 믿고 장기간 투자에 나설 개인투자자들이 급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어 우려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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