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고요의 바다’가 공개된 뒤 만난 배우 이무생은 한껏 들뜬 모습이었다. 그는 시나리오를 받을 때부터 설렘과 기대감이 공존했다며, 완성된 작품을 세상에 많은 이들에게 선보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했다. 그에게 ‘고요의 바다’는 신선했고, 배우로서 성장할 수 있는 계기였고, 도전 정신을 갖게 해준 소중한 기회였다.
최항용 감독의 졸업 작품이었던 단편 영화 ‘고요의 바다’는 필수 자원의 고갈로 황폐해진 근미래의 지구에서 특수 임무를 받고 달에 버려진 연구기지로 떠난 정예 대원들의 이야기로, 제작자로 나선 배우 정우성을 만나 장편화됐다. 영화 ‘미쓰 홍당무’·‘안시성’ 등의 각색을 맡은 박은교 작가까지 합세해 더 디테일해졌고, 넷플릭스를 만나 더 큰 스케일로 구현될 수 있었다.
‘고요의 바다’ 크레딧에 이름을 올린 이무생은 탐사대 보안 팀장 공수혁을 연기했다. 투철한 군인 정신으로 중무장한 공수혁은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인물. 함께 임무를 위해 떠난 동생 공수찬(정순원)의 죽음을 목도하고도 임무에 매진한다. 그는 묵묵히 한윤재(공유) 대장의 오른팔로 활약하기도 한다.
“감독님과 작가님을 만나 뵙고 작품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말 신선했고 기대감이 생겼어요. 그 순간이 정말 좋았죠. 감독님, 작가님과 함께 대화를 하면서 작품 이야기를 하는데 코드가 맞는다고 할까요? 그런 것들이 더해져서 ‘당장 하고 싶다’고 말씀 드렸어요.”
그는 2020년 신드롬을 일으킨 드라마 ‘부부의 세계’ 종영 후 쉼 없이 여러 작품을 작업했지만, 작품이 공개되기까지 시간이 걸려 본의 아니게 공백기를 갖게 됐다. ‘고요의 바다’도 그중 한 작품이다. 그에게는 ‘부부의 세계’ 이후 첫 작품이자, 전 세계로 공개되는 넷플릭스 작품에 처음으로 참여하게 된 기회였다.
“작품 공개 전후에 딱히 상황이 변한 것 없어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시작했기 때문에 부담감을 갖기보다 기대감과 설렘이 있었죠. ‘비 온 뒤에 땅이 잘 굳어진다’고 하잖아요. 이런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비가 와서 조금은 떠 있는 흙을 발로 잘 밟아서 다져놓은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그러고 나서 완성본을 보니 ‘이걸 더 단단하게 다져놓으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상황 하나하나를 곱씹어 보게 되더라고요. 그런 부분에 대해 만족해요.”
작품의 배경은 2075년. 물 부족으로 인해 사람들은 등급제로 나뉘어 식수배급소에서 식수를 배당받고, 오염된 식수를 통해 감염과 질환이 많아지거나 식량 부족, 불법 반려동물 문제 등이 발생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나라 대원들은 우주복을 입고 달에 가기도 한다. 이런 상황들은 모두 경험치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기에 상상력을 발휘해 연기해야 했다.
“그런 부분 때문에 작가님,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SF장르이기 때문에 CG 부분을 상상해야 하는 부분도 있잖아요. 그런 장면에 들어가기 전에 많은 부분을 이야기하고 테이크도 많이 갔어요. 다른 작품보다 그런 부분에서 더 많이 심혈을 기울였죠. 힘들기보다 경험하고 성장하는 기분이었어요.”
공수혁은 냉철한 군인의 면모가 돋보이는 인물. 전작 ‘부부의 세계’에서 지선우(김희애)에게 한없이 따뜻하고 자상한 동료 의사 김윤기를 연기했던 것과는 정반대 캐릭터다. 감정을 감추기 때문에 딱딱해 보이기만 할 수도 있는데, 이무생은 이 모든 것이 일부러 의도한 것이라고 했다. 공수혁의 부모님도 군인이고, 태어날 때부터 당연하게 군인이 될 거라는 생각을 갖고 산 인물로 설정하고, 말투나 몸의 자세 같은 것도 군인처럼 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공수혁의 서사나 과거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던 것에 대해 그는 “그래서 더 공수혁이라는 인물이 더 궁금해지지 않았을까”라며 “때로는 설명이 많은 것보다 그런 부분들을 찾아가면서 새로운 걸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만족스러워 했다.
“긴박한 상황에서 동생인 공수찬이 죽는 모습을 보는 장면은 ‘과연 임무에 충실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힘들었어요. 이 부분 역시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공수혁이 너무 감정적으로 대처한다면 이후의 상황을 끌고 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결론이었어요. 이렇게도 찍어보고 저렇게도 찍어보고 감정선을 여러 각도로 찍어봤는데,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군인의 모습을 유지하는 게 나왔죠. ‘공수혁이 무너지면 안 된다’라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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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혁은 발해 기지 탈출 직전 류태석(이준)에게 허무하게 죽음을 맞는다. 끝까지 탈출할 수 있었지만 결국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쉽지 않았냐고 묻자, 그는 “그 순간 공수혁은 아쉽다는 생각을 안 했을 것이다”라며 캐릭터의 감정과 상황에 몰두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그런 상황 속에서 어떤 선택이 맞을지 생각이 많았다면 그런 선택 안 했을 것이다. 멋지고, 맞는 선택이라고 생각해서 배우로서도 아쉽지 않았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작품은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순위 비영어권 TV 시리즈에서 1위(5일 기준)를 기록하며 큰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신드롬급 인기를 얻은 ‘오징어게임’, ‘지옥’ 등 넷플릭스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와 비교되며 극명하게 호불호가 갈리는 평가를 받았다. 이무생 역시 호불호가 있을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작품이 하고자 한 이야기가 분명하게 전달됐다며 흡족해했다.
“SF적인 요소와 인간 군상들, 감정선들이 와닿았어요. 또 그런 지점에서 공수혁 팀장이 할 부분이 충분히 있었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부분에서 저는 나름 재밌게 봤어요. 호불호가 갈린다는 것은 그만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이 나온 것이니까 긍정적으로 봅니다.”
“달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이지만, 서로 각자의 목적이 있잖아요. 거기서 터지는 스파크나 이견 같은 것들이 어떤 공간이나 어떤 나라든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특수한 상황 안에서 사건이 벌어졌을 때 ‘만약 나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기본적인 인간적 마음에서 시작하는 것 같아요. 어느 나라에서든 공감하지 않을까요?”
‘고요의 바다’ 촬영장의 팀워크는 가히 최고였다. 배우 배두나, 공유, 이준, 김선영, 이무생, 이성욱 등은 물론 제작자인 정우성과 항상 화기애애했다. 10kg가 넘는 우주복을 입고 연기하는 것이 체력적으로 고된 작업이었지만, 다 같이 힘든 상황에 놓이니 서로 협동하는 마음이 생겨난 것이다. 예민해질만하면 서로 옆에서 공기정화 장치를 들어주고 장갑도 빼주면서 시너지가 났다. 그 중심에는 두 주연 배우 배두나와 공유가 있었다.
“이번 작품을 통해 배두나, 공유 배우를 처음 봤는데 정말 편하게 다가와 주더라고요. 두 분이 저와 한 살 차이거든요. 제가 동생이죠. 사석에서는 제가 누나, 형이라고 불러요. 저도 화면으로만 본 배우들이어서 좀 다를까 싶었는데 정말 털털하더라고요. 배우들 포함 스태프들까지 그들을 볼 때 ‘정말 좋은 사람들이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정우성 선배님의 제작자로서의 마인드를 보고는 너무 놀랐어요. 쉬지 않고 계속 현장에 계셨거든요. 배우 출신이다 보니 배우의 고충을 잘 캐치하시더라고요. 두루두루 신경 써주시는 모습을 보고 정말 감사했어요. 행복하고 더 열심히 하게끔 해주셨어요.”
이토록 새로운 캐릭터, 새로운 장르, 그리고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과 함께 작업한 것은 도전이었다. 처음 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도전 정신이 생겼고, 개척 정신을 배웠다. 다른 작품이 아닌 ‘고요의 바다’였기에 가능한 마음이었다.
다음 스텝은 JTBC 드라마 ‘서른아홉’이다. ‘서른 아홉’은 마흔을 코앞에 둔 세 친구의 우정과 사랑,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다루는 현실 휴먼 로맨스로, 배우 손예진·전미도·김지현 등이 출연한다. 이무생은 엔터테인먼트 대표 김진석 역을 맡아 진중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연기를 보여줄 예정이다. 그는 ‘고요의 바다’와는 180도도 아닌 “170도 다른 캐릭터”라며 차기작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서른아홉’에서도 새로운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엔터테인먼트 대표 역할을 맡았는데 전미도에게 첫눈에 반하거든요.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촬영 중후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잘 마무리 짓는 게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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