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도쿄올림픽 양궁 국가대표였던 안산 선수. 놀라운 정확도로 3개의 금메달을 획득했지만, 누군가에게는 그의 양궁 실력보다 헤어스타일이 더 눈에 들어왔다. 안산의 쇼트커트를 본 남초 커뮤니티 유저들이 갓 스물살의 여성이 짧은 머리를 한 건 분명 '탈코르셋'일 것이라는 글과 댓글을 쏟아내면서 안산은 때아닌 페니미스트, 남혐 논란에 시달려야만 했다. 한국 젠더갈등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단적인 사례다.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성결대 교수는 에세이 '슬기로운 좌파생활'에서 이러한 현상이 한국 자본주의가 갖고 있는 마초 자본주의의 특징이라고 진단한다. 소득격차를 넘어 자산격차로 심화한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은 다양한 갈등을 빚어냈고, 사람들은 이제 개인의 문화적 취향 정도로 생각하면 될 일에도 집단적인 분노를 터뜨린다는 것이다.
우 교수는 여성 특혜에 대해 한국 남성들의 주장이 도를 넘어선다면 그것은 전도된 ‘메일 쇼비니즘(Male Chauvinism)’이라고 평가한다. 남성 우월주의를 의미하는 메일 쇼비니즘이 여성들에 대한 역차별을 주장하며 여성들에게 빼앗긴 기회를 회복하자는 잘못된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이대남(20대 남성)'이 자리하고 있다.
책은 '한국형 마초'의 출발을 '중2병'에서 찾는다. 중학교 2학년은 특목고 트랙과 일반고 트랙이 결정되는 시기다. 특목고 트랙에 진입하지 못해 집단 좌절을 체감한 남학생들은 주로 게임에 몰두하며 상실감을 달래는데, 게임 커뮤니티는 대부분 남초 커뮤니티다. 남자끼리 모인 공간에서 '여성들한테 당하고 산다'는 열등감과 결합한 증오가 '여혐(여성혐오)'으로 표출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는 현재 10대 남학생들의 집단적 마초 성향이 20대 보다 강하다는 점에서 이러한 현상이 최소한 10년 이상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20대는 전 세대보다 가난하지만 더욱 보수적으로, 현재 10대는 그보다 더 가난하지만 더더욱 보수로 갈 확률이 높다는 분석이다. 결국 대다수 남자들은 여자를 욕하면서 극우파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문제는 정치권에서 한국 청년들 사이에 벌어지는 젠더 갈등에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대선 정국에서도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젠더 갈등은 청년 표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저자는 이 골 깊은 갈등의 해법으로 청년들에게 '좌파'가 될 것을 제안한다. 여기서 말하는 좌파는 진보와 보수의 낡은 정치에서 벗어나 평등이라는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는 정치철학적 ‘평등주의자(Egalitarian)’를 의미한다. 1만8,000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