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가 바이오 의약품 위탁생산(CMO) 사업에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신약 개발을 본격화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바이오 사업으로 ‘제2 반도체 신화’를 쓰겠다는 삼성의 입장에서는 신약 사업은 다른 사업 피해를 일부 감수하더라도 반드시 가야할 길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다만 삼성이 CMO와 신약 개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 것인가를 놓고는 회의론이 적지 않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 달 28일 미국 바이오젠이 보유한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1,034만1,852주를 23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했다고 밝히며 지분 인수를 계기로 제2 반도체 신화에 도전하는 삼성 바이오 사업 미래 준비에도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라고 발표했다.
회사 측은 그 근거로 ‘삼성바이오로직스 50%+1주, 바이오젠 50%-1주’ 지분 구조에 비해 ‘삼성바이오로직스 100%’ 지분 구조가 의사 결정이 보다 보다 자율적이고 빠르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면서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신규 후보 물질(파이프 라인) 개발, 개방형 혁신(오픈 이노베이션), 신약 사업 등 중장기 성장 전략을 독자적으로, 빠르고 유연하게 추진할 수 있게 됐다고 부연했다. 신약 개발 의지를 다시 한번 확고히 밝힌 것이다.
실제 삼성은 이번 지분 거래로 적어도 바이오젠은 신경 쓰지 않고 신약 사업에 나설 수 있게 됐다. 그동안 바이오젠은 삼성의 신약 개발에 대해서는 소극적이었다는 게 업계의 후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삼성이 신약 사업을 할 경우 삼성과 바이오젠은 향후 경쟁자가 될 수도 있다.
문제는 CMO 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신경을 써야 할 업체는 여전히 많다는 데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생산을 의뢰하며 기밀을 전달할 수 밖에 없는 고객사 입장에서는 삼성의 신약 개발은 계약의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CMO 역량이 아무리 탁월하다 손치더라도 경쟁사가 될 수 있는 곳에 민감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아무래도 꺼려질 수 밖에 없는 탓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아닌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아닌 삼성물산이 신약 사업을 맡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글로벌 CMO 업체인 스위스 론자와 중국 우시앱텍 등이 신약 개발에 선을 긋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물론 독일 베링거인겔하임과 같이 CMO와 신약 사업을 병행하는 곳도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베링거인겔하임도 두 마리 토끼를 완벽하게 잡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신약 개발과 CMO를 모두 잘하는 곳은 베링거인겔하임 정도”라며 “하지만 그런 베링거인겔하임에도 경쟁사는 생산 맡기기를 꺼리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CMO 사업이 부정적 영향을 입을 수 있음에도 삼성이 신약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바이오 사업을 반도체 사업 수준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신약 개발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기 때문이다. 매출만 따져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글로벌 선두 업체로 평가 받는 스위스 론자도 연 매출 10조 원을 넘기지는 못한다. 글로벌 빅파마가 한 해 수십조 원의 매출을 올리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미국 화이자의 경우 올해 매출 100조 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이 내년까지 바이오 분야에 20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지난해 발표했는데 1조7,400억 원의 4공장 투자 비용을 감안하면 CMO 공장을 짓는 것만으로는 쓰기 힘든 돈”이라며 “결국 인수 합병을 통해 신약이나 신약 개발 역량을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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